학문이냐 시장이냐 역할 고민부터
이해관계 몰두하는 교수들 자성까지
위기 진단 출판물 작년의 2배
대학 문제 연구하는 모임도 구성
흔들리는 상아탑, 대학을 둘러싼 담론이 쏟아지고 있다. 대학의 본질적 기능, 지식인의 역할, 나아가 ‘대학의 종말론’까지. 자성하는 학계의 목소리가 절박하다.
해묵은 논제, 대학위기론을 새삼 다시 보는 기류는 출판물에서부터 발견된다. 올 상반기 출판계는 대학과 교수 등의 책무를 묻는 책을 연이어 펴냈다. 7월초까지 ‘왜 대학은 사라지는가’(카모마일북스), ‘폐허의 대학’(책과함께), ‘스탠퍼드 법대 교수가 말하는 대학의 위선’(알마), ‘진격의 대학교’(문학동네) 등 7권이 쏟아졌다.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미국 연구대학에 내맡긴 현실을 비판한 ‘지배받는 지배자’(돌베개),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문학동네)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관련 책이 4권에 불과했던 지난해에 비하면 절반 기간에 이미 2배 이상 출판물이 나온 셈이다.
본질회복이냐 개혁이냐
무엇보다 대학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이들이 직면한 이율배반적인 두 과제다. 즉 대학은 기초학문을 아우르는 최고 연구ㆍ교육기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를 지닌 동시에, 세계화 추세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개혁을 요구 받고 있다. 동시달성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 두 목표가 정부, 기업, 대학행정가에 의해 중구난방 추진되는 가운데 늦게나마 학계가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최근 출간된 ‘폐허의 대학’과 ‘왜 대학은 사라지는가’는 두 목표의 시각 차를 극명히 드러낸다. 대학 담론의 고전인 빌 레딩스의 ‘폐허의 대학’은 순위경쟁에 매몰돼 이성과 학문의 발전이라는 고유 관심사에서 멀어진 대학을 폐허로 묘사한다. 기부금 및 재정, 학생 구성, 장서 규모 등 숫자로 환산 가능한 지표에 몰두해 사유(思惟)를 비생산적 노동 혹은 낭비로 취급하는 대학을 비판하는 대목은 21세기 한국 대학의 현실을 돌아보는데도 유효하다.
이현청 한양대 석좌교수의 ‘왜 대학은 사라지는가’는 대학이 수행했던 고전적 역할의 대전환을 애초에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새 미래상을 제시한 책이다. 경직성과 관료적 특성을 탈피해 MOOC(Multi Online Open Courses) 등 온라인 교육을 적극 활용해 다국적 학생들을 흡수하고, 산학협력 수익형 대학 등 특성화를 추구하는 등 생존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담았다.
후학 양성 포기한 교수들
학자들의 역할을 자문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교수들이 교육보다는 연구에, 연구보다는 명성이나 지위에 눈을 돌리고, 무너지는 상아탑에 대한 인식도 안일하다는 것. 꾸준히 자성의 목소리를 내온 윤해동 한양대 교수는 “대학의 (양적) 대폭발, 대학생 버블이 시작되며 대학의 교육 수준은 중등교육 수준으로 낮아졌다”며 “특히 학문을 직업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일찍부터 미국 대학원 진학을 권유 받아 한국대학에서 제대로 된 학문후속세대가 양성되지 못하다 보니 대학원이 붕괴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방대 졸업생으로 대학원을 채우며 안심하는 사이 대학원은 붕괴되고 학문의 서구종속성은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같은 지적은 김종영 경희대 교수의 ‘지배 받는 지배자’에서도 제기되며, 김경만 서강대 교수는 “서양 학문의 헤게모니에 도전하기 위해 치열한 연구가 필요한데 우리 학자들이 이 대결을 외면하고 학문 대중화 열풍에만 편승한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이해관계에만 몰두하는 지식인에 대한 비판은 영미권에서도 제기된다. ‘스탠퍼드 법대 교수가 말하는 대학의 위선’의 저자 데버러 로드는 “교수들은 지원비가 깎이거나 의무사항이 늘어나는 등 자신의 이해가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을 때에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대응이라고는 학문적 자유의 깃발 아래 임기단축, 임용축소, 지원비삭감 등을 비난하는 것 뿐”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대학론’ 비로소 불 붙었나
쏟아지는 대학담론에 학계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윤해동 교수는 “대중화, 상업화, 사유화가 심각하고 대학이 대학주식회사가 된 상황에서도 한국에서는 대학에 대한 자기 반성적인 논의가 제기된 적이 거의 없다”며 “대학인들이 자신의 존재기반에 대한 반성적 성찰 없이 현재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만 급급해 온 것은 아닌가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을 연구하는 모임도 늦게나마 기틀을 갖춰가고 있다. 지난해 6월 창립한 한국대학학회는 매달 대학의 기원, 구조개혁 방향 등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학회는 내년 봄 저널을 창간하고, 학술대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학회장인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는 “대학 재구조화 문제, 상업화, 학부모에게 전가된 고비용의 등록금 문제 등 대학의 문제가 시민사회를 압도하고 있는데도 그간 연구가 부족했다”며 “학자들의 고민이 미증유의 위기를 맞은 한국 대학에 체질전환 계기를 마련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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