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사태 국민국가 인식에 갇힌 탓
선악 떠나 글로벌경제체제 인정해야
우리 역시 두 인식 사이 균형점 찾아야
‘세계는 착각이다… 우리의 눈은 신뢰할 수 없으며, 세계는 단지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상(世界像)에 불과하다.’
신학부터 우주론까지 섭렵해온 독일의 ‘백과사전 작가’ 게르하르트 슈타군의 우주의 수수께끼라는 책 첫머리에 등장하는 얘기다. ‘세계상’이란 실제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세계관에 따라 각색되어 인식된 ‘왜곡된 세계’ 정도의 뜻일 것이다. 작가가 우주에 관한 사색의 첫머리를 자못 오묘한 선언적 문장으로 시작한 건 요컨대, 인식은 곧 착각이라고 할 정도로 부정확하기 때문에 현상과 세계의 실제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감각을 초월하는 이성과 과학에 의거해야 한다는 취지였던 걸로 기억된다.
최근 유로존 전체를 극도의 혼미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그리스 사태 속에서 새삼 ‘세계는 착각’이라는 슈타군의 언명이 자주 떠올랐다. 구제금융 조건의 수용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정치적 도박은 그렇다 쳐도, 압도적 반대표를 던진 후 그리스의 자존심을 지켰다며 환호하는 현지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오늘날의 세계체제와 격렬히 충돌하고 있는 시대착오적 국민의식 같은 걸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전 지구적인 시스템과 거버넌스를 염두에 둔 세계주의가 본격 대두된 건 국제연맹이 출범한 제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일 것이다. 하지만 주권국가와 세계주의 간의 오랜 긴장과 조화를 거쳐 진정한 의미의 세계체제가 형성된 건 정보기술(IT)의 혁명적 발전과 함께 세계 각국의 자본시장이 개방돼 ‘금융의 세계화’가 완성된 1990년대, 곧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의 시기였던 빌 클린턴 미 행정부 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금융의 세계화란 자본의 국경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세계 어디에 투자하든 그 편의와 권리, 이익의 회수를 보장하는 글로벌시스템, 즉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결제은행(BIS) 등의 기능이 본격 작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다 보니, 자본은 이제 개별 국가의 주권적 규제를 초월해 세계 어디든 원하는 곳에 투자해 생산을 일으키고 합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반면 이전까지 독자적인 공동체 가치에 따라 경제를 운용해왔던 국민국가는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여 더 큰 번영을 일구기 위한 국가 단위의 생산성 경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좋든 싫든 옳든 그르든, 보다 긴밀해진 세계체제가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주어지면서 국민국가의 운영 원리로서 공동체적 가치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예컨대 과거엔 영토 내에서 국리민복을 증진시키는 게 국가공동체의 독립적 가치였다면, 이젠 글로벌 자본의 선택을 받고 그걸 유입시키기 위한 국가 간 생산성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게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가치가 된 것이다. 국민의식 역시 그런 변화에 맞춰 바뀌어야 옳다.
하지만 그리스의 국정과 국민의식은 가장 진화한 세계체제인 유로존에 편입된 후에도 여전히 이전의 국민국가 시대에 머무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유로존 편입 후 엄청난 자본이 홍수처럼 밀려들었지만 생산력을 확대하는데 쓰기는커녕 자산거품을 일으켜 흥청망청 써댔고, 감당할 수 없는 복지확대로 재정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렸다. 구제금융 조건을 거부한 투표 결과 역시 착각인 건 마찬가지다. 거부표를 던진 국민들은 가혹한 긴축을 거부함으로써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개혁조건의 완화로 얻을 이득보다는 그리스라는 국가에 대한 불신이 야기할 장기적 손해가 더 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될 것이다.
세계체제의 변화를 무시한 채 국민국가적 가치만 중시하는 착각의 오류는 비단 그리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시장을 비롯한 4대 개혁이나 규제완화, 조세와 재정개혁 등 거의 모든 핵심 국정 현안에 걸쳐 국민국가적 공동체 가치와 세계체제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상대적 가치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착각에서 벗어나 냉정한 균형점을 찾는 사회적 지혜가 절실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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