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서부 시골의 한 가족이 이사를 한다. 새 정착지는 대도시 샌프란시스코. 입주할 집은 낡고 좁다. 자연의 품에 안겨있던 널따란 이전의 집과 딴판이다. 집 주변 피자가게의 메뉴도 천편일률이다. 아빠의 새 사업은 아직 불안정하고 다인종으로 이뤄진 학교는 영 낯설다. 온통 마음에 들지 않는 일 투성이다. 10대 초반 소녀의 마음엔 거센 바람이 일고 성난 파도가 친다. 소녀는 엄마의 카드를 훔쳐 가출을 결심한다.
흔하고도 뻔한 내용이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깜짝 놀랄 사건으로 스크린을 채우지 않는다. ‘이런 일도 있었지…’라며 사진 앨범 뒤적이듯 회고할 이야기랄까. 하지만 창립 30주년을 맞은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는 언제나 그랬듯 반짝이는 상상력과 기발한 발상으로 마술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가족주의와 성장, 캐릭터의 의인화라는 픽사의 유전자를 바탕으로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를 별스럽게 만들며 관객의 감성을 조준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감정이다. 기쁨 슬픔 분노 까칠 소심 이 다섯 가지 감정이 사람처럼 주인공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그의 감정을 조절하는 걸로 묘사된다. 1995년 창립작 ‘토이스토리’를 비롯해 ‘벅스 라이프’ 니모를 찾아서’ ‘월-E’ ‘카’ ‘라따뚜이’ 등에서 사람 아닌 사람 같은 캐릭터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픽사의 전통이 감정에까지 적용된 것이다.
영화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라일리의 감정, 기쁨과 슬픔이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이탈한 뒤 겪게 되는 모험담이다. 그리고 성장담인데 고난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주체가 감정들이다. 기쁨은 슬픔을 사고뭉치로만 취급하다 슬픔의 존재가치를 깨닫는다. 슬픔이 있어야 진정한 기쁨이 있고 슬픔과 기쁨은 이란성 쌍둥이 같은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행복의 바탕은 가족이라는, 픽사 특유의 가족주의가 흐른다. 거칠게 방황하던 라일리가 결국 향하는 곳은 얼음을 지칠 수 있고 절친한 친구가 있는 중서부 고향이 아니라, 언제든 팔을 열어 뜨겁게 안아줄 가족이 있는 곳이다.
흥미롭고 매혹적인 설정이 많다. 아름다웠던 순간이 하나하나 소중히 보관되어 행복한 추억으로 쌓여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면들에 감탄하게 된다. 라일리가 유아시절 환상으로 빚어낸 캐릭터 빙봉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코끼리와 고양이와 솜사탕을 섞어놓은 이 기이한 캐릭터는 슬프면 사탕 눈물을 쏟곤 한다. 기쁨은 라일리 유아기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상징하는 이 캐릭터를 ‘감정 컨트롤 본부’로 데려가려 한다. 사춘기 문턱에서 방황하는 라일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다. 과연 빙봉은 ‘감정 컨트롤 본부’에 들어갈 수 있을까. 결과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듯. ‘인사이드 아웃’은 퇴행이 아닌 성장에 대한 영화이니까. ‘업’을 연출한 피트 닥터 감독. 9일 개봉, 전체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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