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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넌 커서 뭐가 될래

입력
2015.07.0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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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졸업앨범을 만들 무렵, 나는 선생님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서 있었다. “넌 커서 뭐가 될래” 그나마 아는 직업 중에 고르고 골라 화가라고 대답했다가, 다른 친구들의 답변에서 ‘공주’나 ‘로봇’을 발견했을 때의 패배감이란! 화가는 신발 벗고 쫓아가도 공주나 로봇의 ‘간지’에는 못 미칠 것 같았다. 다행히 부끄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초등학생쯤부터는 꿈을 묻는 말에 소방관이나 선생님 같은 특정 직업군을 대는 것이 상식이 되기 때문이다. 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은 어떤 직업을 원하느냐는 뜻이고, 직업은 무난하게 꿈의 동의어로 쓰인다. 직업이 있는 사람에게는 대부분 꿈을 묻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대(大) 오디션의 시대,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 4’가 방송 중이며, ‘슈퍼스타 K7’과 ‘케이팝스타 5’가 준비 중이다. 이들은 앞다투어 꿈을 찾으라고 유혹한다. 오디션의 단계 진출은 꿈을 펼치고 접는 것을 결정하는 기로처럼 보이고, 인지도를 얻고 실력을 증명해서 직업 가수가 된 사람은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된다.

‘쇼미더머니 4’의 한 출연자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왔다며 꿈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현실이 피폐할지언정 꿈을 포기하지 않는 캔디나, 현실에 치어 꿈을 잃어버린 ‘그저 그런 어른’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도식이다. 꿈과 직업의 불일치는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삼지 못한 이들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밥벌이의 지겨움을 증폭시킨다.

방송인 권해효씨가 “꿈과 직업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꿈이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생각이라면, 직업은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밥벌이라는 것이다. 직업이 바뀌면 꿈이 바뀌는가? 꿈이 바뀌면 직업을 바꿔야 하는가? 꿈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이라면 직업은 그 생을 지탱하는 동력이다.

대부분의 직업은 생활을 꾸리고 세계를 지탱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꿈이 되기에는 너무 사소하거나 보잘것없다. 여기서 자아를 찾으려는 시도는 높은 확률로 실패로 돌아간다. 꿈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직업은 필요에 의한 것으로, 누군가의 ‘하고 싶은 일’이 직업으로 구성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서 엄청난 노래 실력으로 유명해진 출연자(일명 ‘울산 나얼’)는 가수를 꿈꾸는 친구들이 기회를 잡지 못해 고통 받는데, 취미로도 음악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을 사랑하지만 직업으로 삼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 메시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디션에 떨어졌다고, 24시간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을 내던지지 않는다고, 꿈의 순수성이 퇴색되거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은 무엇이 되는 순간의 완결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은 특정 직업을 가진 ‘무엇’이 되는 순간 멈추지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는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면서 소설을 썼고, 비비안 마이어는 가난하고 평범한 보모였지만 사진찍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꿈이나 미래를 상상할 때 부려놓아야 하는 말은 특정 직업과 같은 명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운동성을 약속하는 동사여야 할 것이다. 평생 노래한다, 쓴다, 지치지 않고 투쟁한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 같은 형태로 말이다.

다만 노동자가 모든 시간과 돈, 체력과 정신적 에너지를 쪽쪽 빨아 먹히는 상황에서 직업과 분리된 꿈이란, 자칫 또 다른 자기계발 논리에 빠질 위험을 내포한다. 따라서 최저 임금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재의 노동 구조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타격을 가하는 것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만큼이나 절박하게 삶에서 꿈의 자리를 확보하는 시도이다.

지금까지 꿈의 정의나 개념, 이루는 방법 등에는 너무나 많은 제약이 있었다. 꿈이 삶의 궁극적인 형식과 연동될 때 이에 대한 상상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해질 것이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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