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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꽃게와 해파리의 법칙

입력
2015.07.0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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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15일 서해 연평도 인근 NLL인접 지역에서 발생한 '제1 연평해전'의 모습. 우리측 해군 고속정(오른쪽)이 선제공격을 가해 오는 북한 경비정(왼쪽)에 충돌 공격을 가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9년 6월 15일 서해 연평도 인근 NLL인접 지역에서 발생한 '제1 연평해전'의 모습. 우리측 해군 고속정(오른쪽)이 선제공격을 가해 오는 북한 경비정(왼쪽)에 충돌 공격을 가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꽃게는 전쟁을 부르고 해파리는 평화를 부른다. 지난 20여년 간 우리나라 서북해역에서 일관되게 관철되는 불변의 법칙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양자강 하류로부터 엄청난 꽃게 떼가 서해로 몰려오자 연평어장에는 남북한의 어선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 어선을 보호하기 위해 다시 남북한의 경비정이 출동하여 북방한계선(NLL) 근처에서 서로 대치하게 된다.

국립수산과학원 통계자료에 의하면 제1연평해전이 일어난 1999년에 인천광역시의 꽃게 수확은 약 9,000톤이고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2002년에는 약 1만5,000톤이라는 기록적 수확고를 올렸다. 연평어장 개장 이래 기록적인 꽃게 풍년이 들자 남북의 어선과 경비정이 뒤엉켜 대치하다가 교전이 벌어졌다.

서해에서 꽃게가 사라진 노무현 정부 5년간 남북 간에는 교전이 없었다. 2003년에 약 7,000톤으로 줄어든 수확고는 2004년에는 1,000톤 미만으로 떨어졌고 2005년에는 아예 꽃게 수확이 바닥을 쳤다. 그 대신 이 시기에는 노무라입깃해파리, 보름달물해파리, 커튼원양해파리, 유령해파리가 창궐하여 서해의 연근해어업이 완전히 망가졌다. 어선이 몰려올 이유가 없으니 남북 함정이 출몰할 일이 없고 평화가 정착된다.

사라진 꽃게는 2007년부터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여 이에 놀란 노무현 대통령이 서둘러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남북공동어로를 제안했다가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9년에 이르자 2002년 수준인 1만톤 이상으로 완전히 어획고가 회복된다. 금어기가 풀려 꽃게 조업이 시작되는 4월이 코앞에 닥친 2010년 3월 말. 합동참모본부와 해군은 대규모 꽃게 조업을 예상하고 어선을 보호하기 위한 ‘꽃게작전’을 수행 중에 있었다. 이 작전이 진행 중인 3월 26일에 천안함이 피격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꽃게잡이의 마지막 시기인 그해 11월에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서해 어장은 엉망이 된다. 해파리가 불러온 평화를 꽃게가 다시 전쟁으로 바꾼 셈이다.

박근혜정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지금 서해는 해파리 경보가 발령 중이다. 연평도의 꽃게잡이는 해파리에다가 중국 어선의 출몰로 아예 파탄 직전 상황이다. 이것이 박근혜정부에서 서해 평화가 유지된 이유라고 한다면 해파리가 통치하는 서해 바다에서 당분간 안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점에서 해파리는 미국보다 더 든든한 한국 해군의 동맹군이다. 이렇게 보면 서해에는 두 개의 전쟁이 있다. 꽃게와 해파리라는 정치적 어종이 수중에서 벌이는 영토 분쟁과 이로 인해 유발되는 남북한의 정치군사 전쟁이다.

자연이 남북한 정세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비단 서해만이 아니다. 지금 내리는 단비는 한반도 남단의 가뭄만 일부 해소하고 북한에 닥친 100년만의 가뭄을 해소하는 것을 거부한다. 휴전선까지만 빗줄기를 뿌리고 거짓말처럼 물러가는 이 정치적인 비는 북한을 고립시키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가장 앞서서 구현하며 보수 정권의 동맹군 노릇을 한다. 올 5월부터 때마침 들이닥친 메르스라는 불청객은 남북한의 사회체제를 방역의 필요에 의해 더더욱 폐쇄적으로 만드는 데 단단히 일조했고 한미정상회담까지 날려버린 무시무시한 정치력을 발휘했다.

통일 대박이니 안보니 거창한 수사는 필요 없다. 작은 자극에도 요동치는 한반도 분단체제는 인간의 의지보다 해파리와 메르스와 가뭄으로 재구성되어 왔고 앞으로도 다른 자극에 의해 요동칠 것이다. 우리가 평화공존의 새 역사를 만들지 못하고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지 못하니까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통치한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뒤처져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상실한 우리는 해파리에도 메르스에도 가뭄에도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게 우리 운명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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