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서 과일꼬치, 생선 등 장사
리어카에 온 식구 생계 실려
6일 서울 을지로 5가에서 만난 노점상 이모(73)씨가 싱싱한 멜론 조각에 먹기 좋게 막대기를 꽂아 건넸다. 작은 이동식 매대 위엔 갓 자른 과일 조각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이씨는 과일꼬치 장사를 하기 전엔 전문 과일상을 30년 넘게 운영해온 사업가였다. 사업 실패와 함께 멈춰버릴 뻔 했던 이씨의 삶은 5년 전 작은 리어카 바퀴를 만나 다시 구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온 식구의 생계가 이 코딱지만한 리어카에 실려 있다.
얼마 전까지 인근 동대문 시장을 찾는 관광객 덕분에 “자릿세 내고도 꽤 남았다”던 이씨는 “메르스 터지고 나서 매출이 10%까지 떨어졌다”라며 한숨을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씨의 노점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엔 국립중앙의료원이 자리잡고 있다. 행인들의 발길이 뜸한 보도 위로 노점 리어카 대부분이 줄지어 휴업 상태다. 일찌감치 하루 장사를 마무리 하던 한 노점상은 “그렇잖아도 손님이 없는 자린데 메르스로 그마저 끊겼다”며 “문닫고 쉬는 게 오히려 이득”이라고 푸념했다. 리어카에 바퀴도 달렸겠다, 목 좋은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면 “텃새 때문에 옮기는 건 생각도 못한다”고 또 한숨이다. 내리 누르는 삶의 무게를 줄여 주진 못해도 그럭저럭 굴러 가게 해 준 고마운 바퀴지만 메르스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을지로를 벗어나 청계천로를 따라 걷는 동안 수 많은 바퀴의 행렬과 마주쳤다. 그 사이에서 유독 더디게 구르는 수레바퀴 위엔 1kg 당 백 원도 채 못 받는 폐지가 산더미처럼 실렸다. 맨 땅 위에 온 몸을 던져 앞으로 나아가는 바퀴는 꾸역꾸역 쉬지 않고 달리는 우리 인생과 닮았다. 손수레에 떡을 잔뜩 싣고 나온 아주머니는 장사도 잊은 채 상념에 젖었고 생선장사의 리어카 바퀴엔 세월의 비린내가 진하게 배어 있다. 아이스크림 박스를 끌고 청계천 산책로까지 진출한 초보 노점상은 손님보다 단속반 걱정으로 잔뜩 긴장한 듯 하다.
70대 구두 수선공, 트럭 만물상은
"이 나이에도 할 일 있어 행복해요"
떠도는 바퀴 위의 삶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것일까. 태평로 변에 늘어 선 고층 빌딩 그늘의 한 자락, 삼륜차 짐칸에 올라 앉은 설모(77)씨는 바퀴 위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넓이 1㎡도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엔 설씨의 47년 인생이 그대로 실려 있다. 구두와 가방 수선이란 한 우물을 파 온 설씨는 나름 이 분야 최고를 자부한다. 개조한 오토바이는 단속에 대비한 기동성 확보 수단이다. 합법적인 부스에서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던 때도 있었지만 6년 전 조건이 맞지 않아 부스를 포기해야 했다. 길바닥 생활이 힘겨워 일을 그만둘까 하다가 삼륜차를 마련했다. 설씨는“이 나이에도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힘 닿는 날까지 손님들한테 서비스를 하고 싶다”라며 밝게 웃었다.
나락으로 떨어질 뻔 했던 인생
둥근 바퀴 만나 다시 굴러가
없는 것 빼고 다 파는 만물상 최모(73)씨의 인생을 지탱하는 것은 1톤짜리 트럭 바퀴다. 바가지 대야 이태리타올 나프탈렌 프라이펜 수세미 빨래집게… 작은 트럭에 300가지가 넘는 물건을 싣고 다닌다. 길가에 물건을 풀어 놓는 데만 2시간, 트럭에 다시 싣는데 2시간이 걸린다. 최씨는 “IMF때 부도 맞은 뒤부터 인생이 멈출 뻔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것 저것 다 실패하고 결국 10년 전 만물상 트럭을 끌기 시작하면서 최씨의 인생도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벌이는 뭐 그럭저럭… 용돈 벌이 수준이지. 그래도 이 나이에 할 일 있다는 게 어디야, 자식들 눈치 안 보고…” 최씨가 밝힌 장사의 성공 비결은 매일 장소를 옮겨 다니는 데 있다. 단골들에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찾아 오는 만물상이 왠지 기다려지게 만드는 효과도 있고 단속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거 신문에 나가면 절대 안돼. 공무원들이 단속하러 온단 말이야. 물건만 살짝 찍어가. 나도 용돈은 벌어야지 않겠는가”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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