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옛모습 간직한 이발관•약방…쑥스런 미소로 손님맞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옛모습 간직한 이발관•약방…쑥스런 미소로 손님맞이

입력
2015.07.07 21:01
0 0

하점면 이강삼거리 부근 첫 번째 군 초소에서 간단한 메모지를 받는다. 이름과 전화·차량번호, 방문지와 체류시간을 적어 두 번째 초소에 제출하면 방문증을 내준다. 교동도는 1년 전 교동대교 개통으로 강화도와 연결돼 육지와 다름없지만 여전히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안에 있다. 오랜 시간 외부인의 발길이 뜸했던 만큼 낡은 시간의 흔적들이 섬 곳곳에 남아있다.

대룡시장 입구 낡은 슬레이트집 담벼락에 옛날 포스터가 붙어 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대룡시장 입구 낡은 슬레이트집 담벼락에 옛날 포스터가 붙어 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대표적인 곳이 면사무소가 있는 대룡리 대룡시장이다. 시장 어귀 담장도 없이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힘겹게 이고 있는 건물이 시간여행의 시작이다. 담벼락에 그려진‘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일시에 쥐를 잡자’ 등의 포스터가 여행객을 일순간에 1970년대로 안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옛날 포스터는 교동시장에서 가장 깔끔한 축에 속한다. 작년부터 관광객이 몰리면서 새로 단장했기 때문이다.

차 한대 통과하기도 쉽지 않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시간은 점점 과거로 돌아간다. 교동이발관에는 부지런히 빨강·파랑 표시등이 돌아가고, 동산약방(약국이 아니다)은 여전히 동네 주민들 잔병치레에 꼭 필요한 곳이다. 중앙신발은 대놓고 ‘조선 나○키’(고무신)를 자랑하고, 추 떨어진 괘종시계를 내걸어도 금은방 시간은 쉬지않고 흘러간다. 잡곡가게 사장님은 한가하게 청매실을 다듬고, 교동다방 안주인은 커피보다 오디 앵두 개복숭아 등 교동도산 과일 차에 더욱 정성을 들인다. 그러나 오래된 시간이 언제 멈출지 알 수 없는 모습도 눈에 띈다. 튀김과 찐빵을 팔던 분식점과 드라마 촬영장이었던 제과점 유리창엔 뽀얗게 먼지가 쌓였고, 뒷골목 교동방앗간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대룡시장 시계바에 낡은 시간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대룡시장 시계바에 낡은 시간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이발관도 여전히 성업중.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이발관도 여전히 성업중.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갑자기 늘어난 외지인의 발길이 반갑지 않은 이들도 있다. 손 뻗으면 닿을 듯한 낮은 슬레이트와 양철지붕 처마에 집을 지은 제비가 때아닌 수난이다. 낯선 이들의 과도한 관심에 작년에 비하면 절반은 떠나갔단다.

관광객이 익숙하지 않기는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시장 한 가운데 2층 양철지붕 아래 수예점엔 ‘빛고은 사랑방’이라는 간판이 달려있다. 창가에 진열한 천연염색 손수건과 꽃차 등은 누가 봐도 관광객을 겨냥한 상품인데 사랑방에 모인 주민들은 아직도 외지인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게 쑥스럽기만 하다. 수 십 년간 낯익은 사람들만 상대로 필요한 물건만 팔아오다 가끔씩 외지인이 고개라도 들이밀면 당황스러움이 앞선다. 집에서 만든 꽃차를 내놓은 아주머니는 혹시라도 사진에 찍힐까 멀찍이 떨어져서도 등을 돌렸다. 관광객들이 가격을 물어봐도 선뜻 자랑하지 못하고 얼굴이 먼저 붉어진단다.

자녀들 학교 때문에 외지로 나간 몇 년을 빼고 54년간 이 섬에 살고 있다는 한 여성은 교동도의 삶을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으로 정리했다. 산도 들도 마을도 그리고 거기에 기대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익숙하기 때문에 편안하다는 말이다. 다소 불편한 것도 오히려 장점이다. “다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입방아에 오를 짓은 못하죠”몸에 밴 약삭빠른 친절보다 다소 어눌하고 쑥스런 미소가 교동도 사랑방의 매력이다.

대룡시장 구경이 끝나면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화개산에 올라보는 것도 좋겠다. 해발 260m에 불과하고 등산로도 1.5km 남짓이지만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조망이 시원하다.

화개산은 작은 산이지만 풍경은 결코 작지 않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화개산은 작은 산이지만 풍경은 결코 작지 않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교동도 끝마을 인사리에선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교동도 끝마을 인사리에선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교동면사무소에서 출발해 500m 가량 평지를 지나면 나머지 구간은 꾸준히 오르막길이다. 그래도 심심하지 않을 만큼 이야기 거리를 심어 놓았다. 본격적으로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엔 커다란 돌무덤 한증막이 눈길을 끈다. 조선후기부터 1970년대까지 사용한 것이라는데 찜질방 불한증막의 원조라 해도 되겠다. 조금 더 올라가면 부모에게 무사함을 알리기 위해 수기를 흔들다 적과 내통한다는 오해를 받고 처형된 병사의 ‘효자묘’ 자리고, 형체를 알 수 없이 훼손된 돌무더기는 화개산성터다. 정상에 오르기 바로 직전, 동물 발자국 몇 개 찍힌 것 같은 구멍바위에는 청동기시대 주술행위 흔적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뭐 하나 똑 부러지게 고증된 것은 없지만 이제 막 이야기를 덧붙여가는 산길이다.

드디어 정상, 느닷없는 팔각정과 산불 감시용인 듯한 망루가 눈에 거슬리지만 내려다보는 풍경만큼은 결코 작은 산이 아니다. 동으로 강화도와 남으로 석모도를 비롯해 미법도 서검도 볼음도 아차도 주문도가 띠처럼 이어진다. 서와 북으로는 간척으로 형성된 넓은 들판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한강과 예성강이 만나 뒤섞인 회색 빛 물길 너머로는 북한의 곡창지대 연안군(옛 연백군)의 마을들이 아스라하다. 가까운 곳은 3.2km 에 불과하다니 교동도에서 남북은 심리적 거리보다 훨씬 가깝다. 대룡시장도 6.25때 피난 온 연백 주민들이 장사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화개산 정상에서 바라본 너른 들판 한 가운데는 40년을 이어온 교동정미소가 지금도 옛날 원동기를 돌려 ‘교동섬쌀’을 찧어 내고 있다. 간척지에 해풍이 깃들어 더 찰 지고 맛있다며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 유명세 때문에 정미소 한쪽 구석엔 마늘과 감자 등 방앗간과는 상관없는 농산물도 수북이 쌓여있다. 교동쌀을 구매하러 온 외지인들에게 팔기 위해 인근 주민들이 내놓은 물건들이다. 도로는 이곳에서도 3km 쯤 더 이어져 인사리에서 끝난다. 몇 겹의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지만 북측 산세는 더욱 또렷하다. 교동대교를 지나 군 초소에 출입증을 반납하면 교동도는 다시 시간이 멈춘 섬이 되어 있다.

강화=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