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중단 이후 해마다 기자회견
대부분 영세업체… 전 재산 쏟아부어
신불자ㆍ노숙자 되고 이혼당하기도
"설비ㆍ투자기금 등 보상해줬으면"
정부에 특별법 제정 거듭 요구도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에 거주하는 이종복(60)씨는 유독 7월만 되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새벽에 잠을 깨는 일이 잦다. 금강산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며 한 때 하루 수백 만원의 매출을 올리던 그의 삶은 7년 전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이후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오가지 않았던 중단 초기에도 금강산 관광길이 다시 열리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동네를 지켜왔지만 오랜 기다림의 결과는 수천 만원의 빚뿐이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그는 이제 인근 전방 부대를 오가며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성군 주민들 모두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며 “이제는 말할 기운도 없다. 우리가 더는 지치지 않도록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꿈과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막노동 하루 일당 10만원을 포기한 채 4시간 버스를 타고 서울로 달려온 그는 절규했다.
금강산관광 중단 조치로 피해를 본 이들의 기자회견은 2008년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7월 11일) 이후 벌써 7년째 이어지는 연례행사다. 행사 비용은 금강산 관광에 참여한 49개 협력업체로 구성된 금강산기업인협의회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이씨는 이날 소상공인 피해자들이 많은 고성군 주민 대표 자격으로 회견장에 나왔다.
업종과 규모는 다양하지만 속이 타 들어가는 기업인들의 심정은 똑같았다. 한 사람 한 사람 행사장에 도착할 때마다 이들은 서로에게 “아직 살아계시냐”고 안부를 물었다. 이종흥 금강산기업인협의회 회장은 “금강산 기업 대부분들이 영세한 업체들이고, 금강산에 투자한 게 전 재산인 경우가 많아 삶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만 하더라도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 후 금강산에서 맥주 제조업에 뛰어들었지만 사업 시작 1년 만에 관광이 중단되면서 전 재산(49억 원)을 고스란히 날렸고, 이후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화장품, 의료기 영업 등으로 전전하며 버티고 있다. 그는 “기업인들 가운데 생계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노숙자가 되거나 이혼을 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실제 기업인협의회 회원들은 400명에 달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온 사람은 25명 남짓이었다.
금강산에서 세탁업체를 운영했던 최우식 대표는 “관광이 중단된 이후 우리가 물건을 빼려고 하자 정부 관계자가 ‘금방 또 올 건데 번거롭게 뭘 옮기냐’고 했었다. 그때부터 ‘곧 된다’는 말만 철썩 같이 믿고 7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다”며 “차라리 정부가 안 된다고 말해주고 현지 자산을 인수해줘 발을 빼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에 협의회는 정부에게 각 기업들이 투자한 설비 비용을 보상,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7년 동안 3차례에 걸쳐 총 185억 원을 대출해주긴 했지만 언제든 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남측에서 사무실을 운영ㆍ유지하는 데 모두 쏟아 부었기 때문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견장에 나온 이들의 희망은 모두 한가지였다. 금강산 관광 사업 당시 사진과 영상물을 제작해 납품했던 사진작가 이정수씨는 “물질적 보상보다 금강산 관광길이 다시 뚫려 남북 협력사업의 개척자라는 자부심을 회복해 신바람 나게 일하는 게 유일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안 베란다에 한 가득 쌓아 놓은 금강산 사진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며 “남북 교류 활성화에 물꼬를 튼 금강산을 언제까지 애물단지로 놓을 순 없지 않느냐.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희망고문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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