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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어든] FC서울이 '최용수 해고'를 택했더라면

입력
2015.07.0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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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여름, 런던에서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레엄 수네스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감독직에서 물러나 뉴캐슬로 간다는 소식을 들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네스는 블랙번을 3년 동안 이끌며 훌륭한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마지막 18개월 동안은 완전히 길을 잃고 헤맸다. 2004년 시즌이 끝날 때 블랙번은 간신히 강등권에서 탈출했고 다음 시즌 초반이 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됐었다.

당시 블랙번이 강등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들이 있었고, 다수의 팬들은 수네스를 경질하자고 주장했었다. 수네스의 잔여 연봉도 지급해야 했기에 꽤 ‘값비싼 경질’이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갑자기 뉴캐슬이 등장해 수네스를 데려가는 바람에 오히려 블랙번은 보상금을 얻고 수네스를 내보낼 수 있었다. 블랙번 팬들은 그 상황은 도저히 믿지 못했다. 현금의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수네스를 내보내고 싶었는데, 뉴캐슬이 나타나 돈까지 주니 꿈과 같은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리버풀의 레전드' 그레엄 수네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리버풀의 레전드' 그레엄 수네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FC 서울의 최용수 감독이 그와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난 시즌 최용수 감독은 서울을 K리그 클래식 3위로 이끌었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최용수 감독은 우승도 경험했고 지도력도 인정받은 좋은 지도자다. 하지만 나는 최용수 감독이 중국으로 가는 게 모두를 위한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서울, 최용수 자신, 장수 구단이 모두 윈윈윈하는 결정이었을 것 같다.

과거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내게 ‘감독이 한 구단에 3년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되는 걸세’라고 이야기했었다. 3년이 지나면 익숙해진 선수들이 감독의 말을 더 이상 심각하게 듣지 않으려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말이 전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프로축구에서 구단과 감독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예는 많지 않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의 FC 서울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감독 중 하나로 남을 확률은 꽤 높다고 본다)

최용수 감독이 2013 AFC 챔피언스리그의 우승을 가져왔다면 레전드 반열에 더 쉽게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서울이 광저우에 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기억되어야만 한다. 결과는 1-1 그리고 2-2였을 뿐이다. 광저우는 엄청난 자금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감독을 보유했지만 FC 서울을 격파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서울은 좀 정체된 느낌인데, 모든 것이 최용수 감독의 잘못은 아니다. 에이스급 선수들이 떠나고 구단에서 돈을 풀지 않을 때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500만 달러를 쓴다고 해도 데얀과 같은 선수를 대체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투자를 하면 조금 더 나은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코스타가 데얀과 비슷한 클래스가 될 확률은 애초에 없었다. 이는 너무나도 명확한 일이었다.

따라서, 서울이 더 수비적인 팀으로 변하게 된 것도 놀라운 현상은 아니었다. 데얀의 득점과 하대성의 지능적 플레이를 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길은 수비적인 플레이뿐이었다. 하대성과 데얀은 유럽에 뒤지지 않는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몇 안 되는 자원이었다. 게다가 몰리나의 하락세가 나타났기에 서울로서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최용수 감독. 프로축구연맹 제공
최용수 감독. 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서울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축구를 하는 팀이 되어갔다. 이번에 최용수 감독이 떠났다면 이 FC서울 구단도 이 기회를 통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재점검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서울은 K리그 넘버1과 아시아 최고 구단이 되고 싶은 야망을 갖고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차라리 서울이 최용수 시대를 끝내고 유명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며 새 분위기로 전환했으면 어떨까? 나는 언제나 서울이 한국에서 가장 화려한 구단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수도에 있는 유일한 1부리그 팀으로서 ‘빅클럽’의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외국인 감독은 상암경기장에 새 에너지를 몰고 올 수 있었다. 외국인 감독이 자취를 감춘 K리그 클래식의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아니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가득한 젊은 감독을 K리그에서 키워나가는 기회도 될 수 있었다 (최근 괌을 이끌고 환상적인 결과를 낸 영국 출신의 개리 화이트 같은 참신한 인물도 고려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최용수 감독의 서울이 에너지를 잃었다고 평가한다. 팀이 표류하는 상황에서 FC 서울 구단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과 철학을 다시 정립해야 할 때다. 최용수의 감독 커리어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FC 서울 구단과 최용수는 너무 편안한 관계가 됐다.

중국에 갔다면 구단의 자금 지원과 함께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장수에서는 선수를 다른 리그에 빼앗기는 대신 빼앗아오는 입장이 되어 다른 축구를 구사할 수 있다. 중국 구단주들의 압박과 간섭이 심하다지만 최용수 감독의 주장과 철학을 아예 묵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팬들도 최용수가 얼마나 훌륭한 감독인지 다시 평가할 기회였다. 게다가 중국에서도 성공을 만들어냈다면 개인의 이력서와 한국 축구의 평가에 또 다른 이정표를 찍었을 것이다.

시즌 중반에 팀을 떠나야 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아 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프로 축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최용수가 충성심을 가진 감독이라지만, 어느 순간 상황이 잘못 돌아가기 시작하고 FC 서울 구단이 '최용수 해고'가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리면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러 측면에서 최용수가 떠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FC 서울 구단의 분위기 전환과 최용수 자신의 발전을 위해 훨씬 더 나은 결정이 되었을 것 같다.

축구칼럼니스트/ 번역: 조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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