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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의화 리더십

입력
2015.07.0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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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리더십이 실종된 지 오래다. 이미 일부는 무덤이나 병상에 누워있고 다른 일부는 각종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도덕적 하자에 시달리고 있다. 요즘은 경제도 어렵고 역병에 가뭄까지 도는데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없어 믿고 따를 리더는 자취를 감춘 것 같다. 이 어려운 시절 대통령이, 줄곧 여의도를 멀리해왔고 정치로부터 초연해오다가 갑자기 독한 말을 쏟아내며 정쟁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여당은 움찔했고 야당은 어부지리를 챙기려 든다. 이때 여의도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주목을 끈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이름같이 ‘의롭게 조화’로운 리더십이다.

기자회견 열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기자회견 열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1. 2015년 6월. 정 의장은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한 대통령에게 흔들리지 않았다. 여야가 서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자 정 의장은 마지막에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어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에 대한 청와대의 우려를 줄이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대통령이 굳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정 의장은 헌법에 따라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에 부쳤다. 대통령이 찍어내려는 원내대표의 거취문제로 여당이 내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국회가 파행을 겪자 정 의장은 끝까지 기다린 뒤 국회법에 따라 재의를 포함한 본회의 일정까지 이끌어냈다. 여야는 6월 임시국회를 정상화시켰고 가뭄과 역병 및 민생에 대처하기로 했다.

#2. 2015년 2월. 정 의장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과정에서 ‘솔로몬’급의 지혜를 발휘했다. 여당은 임명동의안을 단독으로 강행해서라도 처리하려 했으나 야당은 처리 일정까지 반대했다. 정 의장은 야당의 입장을 고려하여 표결 절차를 설 연휴 전까지 며칠 연기해주는 대신 여당이 요구하듯이 표결은 하겠다는 입장을 세웠다. 정 의장은 통화나 문자로 야당의원들을 열심히 설득하기도 했다. 판을 깰 수 없게 된 야당은 본회의 표결에 참여했다.

#3. 2014년 9월. 정 의장은 세월호 특별법 정국에서도 여야를 모두 한 발씩 양보하게 만들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국회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서라도 법안을 처리해달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정 의장은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열면 야당의 반발로 나머지 정기국회 일정까지 마비될 것으로 봤다. 정 의장은 야당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등원을 호소하고 야당이 의총으로 늦자 본회의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했다. 여당은 해양경찰청을 없애고 국민안전처를 만드는 등 정부조직법을 챙겼고 야당은 국정조사를 위한 세월호 특별법을 확보했다.

정치는 승자가 독식하는 게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함께 이기는 길을 모색하는 예술이다. 정치가는 자기만 챙기는 게 아니라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명분과 실리를 찾아내는 지혜와 이를 중재해내는 정치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는 동물의 왕국이나 전쟁통과 다를 게 없어진다. 리더가 어떠한 정치를 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표정이 달라지고 리더십에 따라 국격도 달라진다. 친하고 아는 선수만 쓰며 상대는 바뀌는데 계속 같은 전술만 고집했던 홍명보의 국가대표 축구팀이,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선수를 기용하고 전술도 실리적으로 바꿔가는 슈틸리케에 의하여 180도 달라지는 것은 바로 리더십의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정 의장이 지난 1년 동안 대통령의 눈치를 보았거나 여당 편만 들어주었다면 의회정치는 파행을 거듭했을 것이고 정당정치는 대통령의 위세에 눌렸을 것이다. 남은 임기 1년은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쏜살같이 지나간다. 국민이 믿고 따를 리더십을 갈망하는 시절에 정 의장은 지혜를 모으고 정치력을 발휘하여 국회가 일 잘하고 우뚝 서도록 중심을 꽉 잡아줘야 할 것이다. 여야의 갈등을 조정하고 국민도 대통합하며 남북의 통일도 앞당겨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정의화 국회의장이 대한민국 국회 역대 26명의 의장 가운데 가장 의장다운 리더십을 보였다는 역사적 평가를 듣느냐 마느냐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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