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 참석하려던 경문고 교장
학부모들과 대치 끝 발길 돌려
"교육청보다 학부모 눈치 더 봐"
“학부모들이 끝까지 반대하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청문에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취소 대상으로, 시교육청의 청문에 응하려던 경문고의 홍문식 교장은 30여분간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자학연)와 대치한 끝에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부모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홍 교장은 지난달 29일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자교연)의 청문 거부 선언 때와 달리 예정된 청문에 참석해 향후 계획 등을 알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가 시교육청 정문으로 입장하려 하자 경문고 학부모 회장은 “청문에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고 막아 섰고, 자학연 관계자도 “청문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며 거들었다. 홍 교장은 결국 청문에 참석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고, 대신 시교육청에 서면으로 청문 자료를 제출했다.
이처럼 당초 서울 지역 자사고의 공동대응 차원에서 청문 거부를 선언했다가 시교육청의 청문에 참여하려던 자사고들이 학부모들의 집단반발에 고심하고 있다. 자사고 재지정 취소 위기에 놓인 학교들이 교육당국보다는 학부모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형국이다.
이날 학부모 집회에는 지정취소 청문 대상이 된 경문고ㆍ장훈고ㆍ미림여고ㆍ세화여고 4개교를 포함한 서울시내 24개 자사고 학부모 500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학부모들은 검정색 상ㆍ하의를 맞춰 입은 채 ‘학부모의 뜻을 반영하라’, ‘자사고 무력화 정책 철회’ 등의 팻말을 들고 청문 1시간 전부터 시위를 벌였다. 학부모들은 “자사고 폐지만을 위한 편향된 교육청 평가결과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자사고 폐지를 위한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공동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학부모들에게 막힌 홍 교장은 “앞으로 학부모들과 소통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겠다. 청문과 관계없이 자사고 자격은 유지돼야 한다”며 발길을 돌렸다.
현재 자사고에 재학중인 학생들의 경우 자사고 교육과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음에도 학부모들이 이처럼 반발하는 이유는 자사고 프리미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학 진학 실적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자사고 체제가 바뀔 경우 자녀들이 입시에서 불리해진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다른 일반고보다 입시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자사고에 입학했기 때문에 체제 변화에 대한 거부가 클 것”이라며 “입시에서도 ‘문 닫은 자사고’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림여고도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됐던 청문에 참석하지 않고 자료 제출로 대신했다. 학부모들은 7일에도 집회를 연다는 방침이어서 세화여고와 장훈고에 대한 청문도 궐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미림여고 등 일부 학교는 일반고 전환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학부모들의 집단행동에 막혀 운도 떼지 못하고 있다.
학부모 집회에 동석한 오세목 자교연 회장(중동교 교장)은 “자사고는 교육청보다 학부모 눈치를 더 봐야 한다. 학부모들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