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로 광복 접한 초대 정선역장
12개월 할부로 산 금성 테레비 등
현대사 흐름 속 묵묵히 살아온
시민 70명의 소장품, 사연 한눈에

1951년 서울, 깡마른 열세 살 영자는 폐허가 된 남대문 앞에서 만국기를 팔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아버지를 찾아 경북 김천에서 함경북도 청진을 오가던 그녀의 가족들은 광복 직전 남으로 내려와 6.25 전쟁통에 만국기를 팔아 연명했다. 어머니가 방안에서 밤새 박음질한 만국기를 짊어 매고 오빠는 종로로, 그녀는 덕수궁, 남대문으로 향했다. 장사를 나서는 자식들 뒷모습을 대문간에서 어머니가 오래 지켜봤다.
만국기는 꽤 잘 팔렸다. 언제 어디서 전사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고향을 그리는 마음 탓인지 유엔군 등은 가다가 경례를 붙이기도 하고 과자를 가져와서 바꿔달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깃발들을 허겁지겁 걷었다 다시 걸기를 반복했다. 한 미국인 종군기자는 티없는 그녀의 눈빛을 렌즈에 담았고, 며칠 뒤 인화한 사진을 건넸다. 그녀는 이후 형편이 어려워 버스차장을 하던 고교 시절, 남편 사업이 기울었을 때 늘 당시를 떠올리며 이 사진을 간직해왔다. 지금도 일기예보에 민감하다는 수필가 박영자(77)씨의 얘기다.

당신의 생은 역사다. 구두닦이로 집안 생계를 책임졌던 장남이, 밤샘 봉제일로 아이들을 입히고 먹인 어머니가, 민주주의를 외친 고등학생이, 구조조정으로 명예 퇴직한 가장이 걸어 온 삶들이 더께더께 쌓여 대한민국 현대사를 써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7일부터 9월 29일까지 보통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광복 이후 70년를 돌아보는 특별전 ‘70년의 세월, 70가지 이야기(70 Voices of 70 Years)’를 연다. 넘어지고 일어서며 자신의 길을 걸어온 보통 시민 70명의 이야기와 소장품을 소개한다. 지난해 연구용역을 통해 다양한 연령, 성별, 직업, 출신 지역에서 대한민국 보통 시민 70명을 추려 본인 또는 가족 등을 인터뷰했다.

시대별로 구성된 3부 중 1부는 45년 광복 이후부터 50년대 중반까지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민들의 삶을 소개한다. 라디오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한국어를 통해 광복 소식을 접했다는 강원도 정선 초대역장 주상근(87)씨, 허름한 창고 건물을 임대해 시골에 중학교를 차렸던 이하복(1911~1987년)씨, 미처 피란을 갈 수 없어 서울에 남아 시민들의 모습을 세심히 기록한 역사학자 김성칠(1913~1951)씨 등의 생과 그 기록이 오롯이 담겼다. 전시품은 당시 자서전 수기 원고, 손편지, 사진, 교육용으로 만든 태극기 등이다.

6.25전쟁 중 12세 나이로 미군들의 구두를 닦았던 5남매 맏이 황인덕(76)씨는 손때 묻은 구두닦이통을 내놨다. 그는 “미군들이 구두를 한번 닦고 1달러를 주면서 어린 꼬마가 기특하다고 초콜릿이나 사탕을 팁으로 준 걸 다시 팔아 동생들 생계를 유지했다”며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구두를 닦는 게 부끄러워 어깨걸이를 없애고 보자기에 숨겨 들고 다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에는 부끄러워했지만, 내 인생을 지탱한 고마운 구두통”이라고 했다.

2부에서는 50~90년대 급속한 개발기를, 3부에서는 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를 다룬다. 6남매의 어머니가 간직하고 있던 막내 아들의 수험표, 옆집에서 서럽게 드라마를 훔쳐보던 아이들을 위해 12개월 할부로 구입한 금성 텔레비전,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토목공학자의 사진이 담긴 50년대 카메라, 외환위기로 은행에서 명예 퇴직할 때 들고 나온 은행원의 주판 등이 주인의 애달픈 사연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호헌철폐 미사를 집전한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광주민주화운동 목도 후 인생관이 변했다는 법인스님 등 비교적 세간에 알려진 인물들의 인터뷰와 소장품도 포함됐다. 김성준 학예연구사는 “국가건설, 경제발전, 민주화로 특징 지을 수 있는 우리 현대사의 거시적 흐름을 평범한 시민들이 각자 걸어온 서로 다른 인생의 발자취 속에서 조명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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