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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린 아직 멀었다

입력
2015.07.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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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미얀마의 땅을 헤집고 다녔다. 최대 도시 양곤의 모습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 대도시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자동차와 달구지, 행인과 노점상으로 도시는 이미 혼란의 한가운데였다. 매연과 소음, 무질서와 순박함, 렉서스와 맨발이 공존하는 곳. 혼잡한 현재와 과거의 찬란한 유산이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동남아 대도시의 흔한 풍경이었다. 그곳에선 어린 시절 내 기억과도 마주치게 된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기 전 가난하고 무질서했던, 권력은 부패하고 무도했던, 사람들은 순박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쳤던, 그런 우리의 모습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지금의 한국과 마주하게 된다. 반듯한 건물, 깨끗한 거리, 질서정연한 교통, 정비된 공원 등 이미 선진국이 된 우리의 세련된 모습이다. 위험한 채 방치된 깨어진 맨홀도 없으며, 아무렇게나 버려진 음식쓰레기도 없다. 권력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규율되며, 그 모든 것은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통제 받는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참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다. 뜨거운 중동에서, 구로공단ㆍ울산ㆍ포항의 산업현장에서 굵은 땀을 흘렸다. 부모들의 피나는 노력도 있었다. 한 푼씩 모은 돈으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그것이 지금의 경제대국 한국의 기틀이 되었다. 부산과 광주, 광화문과 대학가에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도 가열하게 벌였다. 그 열망과 함성과 희생이 바로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를 만든 것이다. 시인 김수영은 1964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해 “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좀벌레의 솜털”이라고 노래한 바 있다. 그렇다. 그 많은 피와 땀과 노력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뿌리 속으로 들어가 지금의 자랑스러운 이 나라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우린 아직 너무 멀었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나 사회는 불행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평균 노동시간 1위, 자살률 1위, 출산율 꼴지 등의 이력은 우리의 불행함을 보여준다. “왕정시대 대통령 민주주의와 충돌” “세월호 비리 연루자들 준공무원 특채” “부실로 끝난 성완종 수사” “112만 가구 가계부채 부실 위험” 등 일주일 못 보았던 신문기사 제목들도 한국사회의 민낯을 알려준다.

필리핀군도 위를 날던 비행기 안에서 나는 ‘군주론’을 뒤적였다. 마키아벨리는 비민주적 국가의 권력 획득과 유지 방식을 아주 잘 알려준다. 그는 최고의 군주란 “우호세력을 만들고, 무력이나 속임수로 정복하고, 백성으로부터 사랑과 함께 두려움을 품게 하며,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정적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7장). 15세기 말 교황과 왕과 귀족과 시민의 권력이 뒤엉켜진 나라, 혼돈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바라본 권력의 유지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가 최고의 군주라고 칭했던 체사레 보르자(1475~1507)의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당연히 21세기 민주국가에서는 가당치 않은 일이다. 권력자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며, 정쟁은 법률에서 정한 각자의 권한과 책임, 그리고 논리적 토론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마키아벨리 또한 지금의 민주공화정에 가까운 시민군주를 설명하는 곳(9장)에서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군주는 백성과 관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 소수 특권층이 아닌 대다수 백성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겸손한 권력, 합리적인 토론,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 평등한 기회, 결과적으로 안정된 삶, 질병과 사고로부터의 안전, 유능한 관료체계 등 각자가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60% 가까운 지금의 상황이 위기인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책임 가진 사람이 좀 더 겸손하고 소통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경제적 안정만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그랬다면 부정평가가 이리 크게 나오지 않는다. 권력자와 권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좀 더 많은 분발을 요구한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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