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 작은 섬마을에도 사람들이 길을 잃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목이버섯을 따러 간 할머니 한 분의 행방이 묘연해져 버렸다. 일행이 셋이나 더 있었는데 버섯을 찾다 보면 서로 거리를 두고 가기 마련이라 그러다가 그만 멀어졌고 불러도 대답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119 의용소방대원과 청년들이 팀을 나눠 뒷산을 뒤졌다. 세 팀으로 나눠서 찾아 나섰는데 그 중 한 팀에게 발견되었다. 이미 지쳐서 대답 소리도 희미했고 잘 걷지도 못했단다. 여름이라 풀이 길어 길 잃는 것은 순식간이고 한 번 그러면 당황해서 방향마저 헷갈리기 마련이다. 이런 일 종종 있다.
몇 년 전에는 보건소 공중보건의가 산에 갔다가 같은 꼴을 당했다. 취미인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조금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날이 저물었고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산 너머는 핸드폰이 안 되는 지역이다.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동료 의사들 말을 듣고 예의 대원들이 찾아 나섰지만 그때는 실패했다. 그러면 별의 별 상상이 다 든다. 가장 먼저 드는 추측은 벼랑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진 것? 실제 있던 일들이니까.
밤을 꼬박 새우고 나서야 길을 찾아낸 그는 스스로 걸어서 마을로 돌아왔다. 가까운 마을과 직선거리로는 1, 2㎞도 안 된다. 하지만 여차하면 이렇게 외따로 떨어져서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지금 어딘가에서 의사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집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마을이 얼마나 평안한 곳인지 절감을 하게 된다. 친절한 이웃과 익숙한 물건들, 편안하게 누울 방.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게 그것이다. 오래 전 내 이모부도 혼자 장어 낚으러 밤에 나갔다가 엔진이 고장 나 표류를 했다. 다행히 제주도에 닿아서(조금만 각도가 어긋났어도 태평양 한가운데로 가버렸을 것이다) 돌아왔지만 사흘 내내 배가 고팠고 그것보다는 소주 생각이 간절했고 그것보다 더 생각 난 것이 ‘마누라 기다리는 내 집’이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우리 마을에 대단한 술꾼이 있는데 어제도 취해 비틀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집에만 가면 성공이다.’
대전의 이면우 시인의 시 중에는 ‘가난한 자가 돌아갈 곳은 집 밖에 없다’는 구절이 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여기 작은 내 집뿐이네’ 이런 노래도 있다. 존 하워드 페인이라는 사람이 지은 것으로 그는 집도 절도 없이, 아내도 없이 방랑을 했는데 프랑스 파리에서 동전 한 푼 없는 처량한 신세에 놓여 있을 때 쓴 것이란다. 그는 결국 길에서 사망했다. 이렇게 철저히 혼자인 사람도 가장 그리운 곳이 집이다.
끝없는 사막 한 복판을 홀로 걷고 있거나, 그게 현실감이 떨어진다면, 어떤 이유로 낯선 도시 뒷골목을 하염없이 걸어 다니고 있다고(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터이니) 생각해보면 내 집과 방이(소유 여부를 떠나) 얼마나 소중한가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세월호 참사 때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깊이 울렸던 말이 ‘집에 가자’ 였다.
집이란 그런 곳이다. 그리고 집이 가장 좋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이다. 그런 집이 모인 게 마을이고 그거 모인 게 국가이다. 대한민국은 가장 큰 ‘우리 집’이다.
그런데 배고픔과 범죄에 휘말릴 위험을 각오하고 가출을 감행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 땅이 싫어 이민 가버렸거나 가겠다고 벼르는 이들도 있다. (외국 나갔다가 고생스러우면 ‘우리나라로 가자’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도 반대로)이 땅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가출 학생들과 무어가 다르겠는가. 요즘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앞으로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아무튼 이번 산에서 구조된 할머니 뒷이야기. 친구가 쫓아가서 ‘이게 뭐라고 사람들 고생 시키고 난리냐’ 외치며 버섯 담긴 바구니를 발로 차버렸단다. 그 할머니는 아무 말도 못했고 다음 날 구조대원들에게 돼지갈비를 샀다고 전해진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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