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중국 문학의 대모격인 작가 빙신은 저서 '조국을 떠나다'에서 "영웅이 시대를 만들고,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역설했다. 축구에서는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 호나우두가 활약할 때까지만 해도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는 말이 들어맞았다.
하지만 이제 한 명의 초인(超人)이 모든 걸 휩쓰는 시절은 지났다. 지난 5일(한국시간) 칠레의 우승으로 끝난2015 코파 아메리카가 이를 여실히 증명했다. 클럽(FC바르셀로나)에서 '트레블(한 시즌 3개 대회 석권)'을 달성한 리오넬 메시(27·아르헨티나)도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고개를 떨구는 일이 잦다.
현대 축구의 흐름이 대체로 그러하지만, 남미 축구에서도 절대 강자가 사라졌다. 역대 코파 아메리카 4강 지형도를 보면 우루과이(우승횟수 15회), 아르헨티나(14회), 브라질(8회)이 '3강'을 형성하고 있다. 출전 횟수(41회•1위)와 개최 횟수(7회•2위)가 많은 우루과이는 초창기 우승이 많다. 그러나 월드컵 성적 등을 종합해 볼 때 남미 축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2강 싸움이다.
그러나 최근 2강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 '중'으로 평가되는 우루과이도 대회마다 기복을 드러내고 있으며 대신 칠레, 파라과이, 콜롬비아 등이 약진하고 있다. 지난 7개 대회에서 호나우두가 지배했던 1997, 99년과 아드리아누, 호비뉴(이상 브라질)의 독무대가 됐던 2004, 2007년을 제외하면 우승은 콜롬비아(2001년)와 우루과이(2011년), 칠레(2015년)의 차지였다.
2011년 대회부터는 전통의 강호들이 4강에조차 들지 못하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2011년 대회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4강에 오르지 못했다. 브라질(조별리그 1승 2무)은 8강전에서 파라과이에 졌다. 아르헨티나(1승 2무)는 개최국이었음에도 8강전에서 우루과이에 덜미를 잡혔다. 올해 4강에 든 세 나라(칠레, 페루, 파라과이)도 '언더독(Under Dog)'으로 분류되던 나라이다.
한 명의 '말란드루(Malandro, 천재성을 지닌 브라질 선수를 비유)' 또는 불세출의 아르헨티나 축구스타가 판을 지배하는 시대는 가고 조직력, 전술이 바탕이 된 지능 축구가 활개를 치는 형국이다.
올해 우승국 칠레는 결승전에서 스리백과 포백, 파이브백 등 다양한 수비전술을 구사하며 메시, 세르히오 아구에로, 앙헬 디 마리아가 속한 아르헨티나의 공격진을 무력화시켰다. 칠레는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파이브백을 선보였다. 당시 칠레(16강)와 코스타리카(8강)는 유연한 전술대응으로 재미를 봤다. 스타군단은 아니었지만, 전술과 수비, 변칙적인 경기 운영으로 이변을 일으켰다.
물론 브라질의 자멸도 판세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브라질은 '9번(정통 스트라이커)'의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브라질 황금기에는 펠레, 바바, 가린샤, 토스탕, 호마리우, 베베토, 호나우두, 아드리아누, 호비뉴 등 최강 골잡이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9번을 단 디에고 타르델리(무득점)는 '브라질 9번' 계보를 잇기엔 함량미달이었다. 여기에 네이마르까지 이탈한 브라질은 더 이상 우승후보가 아니었다.
남미 축구는 더 이상 화려한 개인기로만 대변되지 않는다. 유럽식 지능과 전술 축구가 남미 축구에 조금씩 스며들면서 남미 축구도 전력평준화가 이뤄지고 있는 모양새다. 남미 축구는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사진=왼쪽부터 네이마르(공식 페이스북), 리오넬 메시(페이스북), 알렉시스 산체스(남미축구연맹 홈페이지).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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