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내수 동반 부진 이어지는데
장밋빛 전망 내놓아 '양치기 지수'
유가 하락 효과 과도한 반영 탓
통계청, 지표 개선 조심스런 검토
“선행지수 순환변동치요? 안 본 지 꽤 됐어요. 실물 경기와 안 맞은 게 벌써 1년은 됐을걸요.”(증권업계 관계자)
향후 경기 국면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로 꼽히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이하 선행지수)가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하고 있다. 실물 경기는 그야말로 암울한데, 선행지수만 장밋빛 전망을 밝히는 현상이 벌써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통계청은 4년 만의 지수 개편까지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
5일 통계청의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5월 선행지수는 104.1로 2010년 1월(104.1) 이후로 5년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00이 넘으면 통상 3~6개월 뒤 경기가 호전된다는 걸 의미하는 선행지수는 지난해 5월(99.6) 이후 계속 상승 추세다. 선행지수만 놓고 보면 한국 경제는 늦어도 지난해 말부터는 상당한 호황을 누리고 있어야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물 경기는 영 딴 판이다. 현재 경제 국면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동행지수)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100 언저리에서 횡보를 거듭하다가 5월엔 99.8로 내려앉았다. 동행지수가 100 이하면 경기 하강 국면을 의미한다. 정부마저도 수출 부진에 내수 위축까지 겹쳐 비상 수단인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하는 상황이다. 더는 선행지수를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팽배해지는 이유다.
선행지수와 실물 경기 사이에 괴리가 커진 이유가 뭘까. 국내 경기에 호재로 꼽히던 국제 유가 하락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예전만 못해졌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선행지수를 산출할 때 쓰는 구성 지표인 수출입 물가비율이나 국제 원자재가격 지수가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한 유가 하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선행지수가 솟구쳐 올랐다. 서대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선행지수가 지나치게 많이 부풀려진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과도한 가계부채 탓에 가계가 소비를 줄인 것도 유가 하락 효과가 실물경제까지 퍼지지 못하는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도 “기업이 통상 유가가 떨어진 상태에서 물건을 만들어 많이 팔면 이익이 나게 되지만, 세계 교역량 둔화 등 탓에 유가 하락에도 기업들이 생산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과거에 비해 저유가 효과가 둔화됐다”고 했다.
때문에 통계청 안팎에서도 실물 경기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선행지수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계청은 경제 상황을 감안해 비정기적으로 각종 지수의 구성지표를 개편하는데, 2012년 수출입 물가비율과 국제 원자재가격 지수 등을 구성지표에 새롭게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제는 이 지표들이 유가 하락 효과를 과잉 반영하는 데 주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권순 통계청 경제통계기획과장은 “선행지수와 실물 경기의 괴리가 커져 고민이 되는 게 사실”이라면서 “선행지수 구성지표 중 일부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가 있는 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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