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 등 현장 관계자 20명, 수습과정 회고 심층 인터뷰 담아
"긴급 심야 브리핑 시장이 직접 결정… 최 부총리, 판단력 갖춰 말 잘 통해"

“지난 6월 4일 하루 종일 보건복지부 장관과 질병관리본부장한테 (재건축조합 총회 참석자들에 대해) 조치를 요청했는데 이분들이 그 상황을 정확히 잘 모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안 되겠다 싶어 밤늦은 시간에 발표를 하게 됐죠.”
박원순 서울시장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과 관련해 심야 긴급 브리핑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정부의 안일한 대응 방식을 꼬집었다.
서울시는 5일 박 시장을 포함한 20명의 심층 인터뷰 내용이 담긴 이른바 ‘메르스 서울시 징비록’을 공개했다. 심층 인터뷰는 서울시가 메르스 사태 수습과정에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한 전문가와 현장 관계자의 생생한 회고, 경험담, 극복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취지로 진행한 것으로 박 시장도 직접 인터뷰에 참여했다. 인터뷰는 외부 업체에 맡겨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일까지 실시했다.
심층 인터뷰에 따르면 박 시장은 지난달 4일 저녁 10시40분쯤 실시한 ‘심야 브리핑’을 직접 판단해 결정한 것이라고 밝히며 “(최종 결정권자는) 통찰력, 판단력, 실행력, 추진력이 있어야 하며, 전문가들의 의견은 이런 것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대응 컨트롤타워를 전문가한테 맡기면서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이 최종 결정을 하게 된 것에 대해 박 시장은 “최종 결정권자는 중앙정부로 따지면 대통령이고, 서울시로 따지면 서울시장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충분히 듣되 여러 가지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서는 최종 컨트롤타워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며 사실상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간접 비판했다.
박 시장은 중앙정부의 대응방식에 대해 ‘소통의 부재와 비공개 원칙’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공개와 공유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인데 특히 전염병, 감염병은 더욱 더 그렇다”면서 “(메르스가) 지금 이렇게 잡혀가고 있는 게 정부나 서울시가 잘했다기 보다 시민들이 메르스라는 걸 이제는 알고 스스로 자각하고 스스로 협력하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시장은 메르스 위기 경보 단계와 관련해 “주의단계로 있는 것은 규정에 따라서 취한 조치라고 생각하지만 만약에 내가 최종 결정권자였다면 아마 한 단계는 더 올렸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에 비판을 쏟아내던 박 시장이지만 최경환 부총리의 대응력에 대해서만은 높게 평가했다. 박 시장은 “정부에서 그래도 최고로 역량과 판단력을 갖춘 분은 최 부총리라 생각한다”면서 “최 부총리한테 ‘보건복지부에 맡겨만 놓고 총리실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컨트롤타워가 총리실이라면 총리실에서 바로 장악해서 책임지셔야 한다’고 했는데 바로 다음날 총리실의 국장급이 와서 조사단장을 맡았다. 이 분과는 말이 통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메르스 대응에 점수를 준다면 공무원들의 고생을 감안해 100점을 주고 싶다는 박 시장은 그러면서도 보완해야 할 점을 거론했다. 그는 “음압병상이나 격리시설, 감염병 전문병원, 훈련된 의료진, 훈련된 역학조사관 등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감염병관리사업지원단이 상설화되고 강화할 필요가 있고 역학조사관이 서울시에 10명, 구청에 1명씩 보건소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번 경험을 통해 서울시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계기도 됐고 큰 예방주사를 한 대 맞은 셈이 됐다”면서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을 쓴 이유도 다음에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인데, 심층 인터뷰도 그런 차원이다”고 인터뷰 취지를 설명했다.
서울시 메르스 대응의 실무자였던 김창보 시 보건기획관은 사태 악화와 관련 “메르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였는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지 못하고 너무 섣부르게 단정 지었던 것 같다”며 “위기관리의 차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너무 의과학적인 패러다임이 세게 작동해 쉽게 단정지은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장 교수는 “초동 대응의 권한은 주되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모든 권한을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대통령이 컨트롤타워의 장을 맡아야 한다”며 “정부 행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정부 예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컨트롤타워를 하라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권순경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은 현장에서의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그는 “메르스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부분은 이용하는 분도 보호해야 하고 우리 대원도 보호해야 했다는 점이었다”며 “또 환자들이 자기 증상을 쉽게 노출 시키지 않아 굉장히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나백주 서북병원장은 “정부가 뒤늦게나마 병원 명단을 공개하고 역학조사에 지역 민간자원을 동원해 협력한 점은 잘했지만 전반적으로 아쉬운 점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 시장의 심야 긴급 브리핑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35번 환자인 삼성서울병원 의사에게 사전에 브리핑 취지를 설명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가했다.
유지현 보건노조위원장은 의료진도 얼마나 메르스 공포에 시달렸는지를 전했다. 유 위원장은 “제일 공포스러웠던 건 초반기 보호장구가 없을 때 이 환자가 의심환자인지 확진환자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대면해야 했다. (인력이 부족해) 1명이 거의 50명을 보기도 했다”며 열악한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는 심층인터뷰 결과를 시 메르스 대응 백서 등 향후 메르스와 같은 유사 감염병 발생 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한 기초자료 및 서울시 보건의료 종합대책 마련에 반영할 계획이다. 시는 인터뷰 녹취록 전문을 6일 서울시 홈페이지(www.seoul.go.kr)를 통해 시민들에게도 공개한다. 또 정부 해당부서에도 전달해 공유할 예정이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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