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은 경기장에, 입과 손은 음식으로. 스포츠 관람에서 빠지지 않는 풍경입니다. 13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윔블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기자가 목격한 올 잉글랜드 클럽(윔블던 대회 개최지)은 과장을 조금 보태서 그야말로 ‘먹자판’이었습니다. 첫 본선 경기가 열린 지난달 29일 13번 게이트로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센터코트를 울타리처럼 둘러싼 4층 규모의 식당이었습니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과 클럽 멤버 전용 식당인 이곳은 남성의 경우 넥타이를 메야 하고 여성 역시 정장을 갖춰 입어야 출입할 수 있는 ‘콧대’높은 곳입니다. 영국 신사와 숙녀들은 화려한 꽃들이 수놓은 테이블에서 우아하게 만찬을 즐깁니다. 아보카도에 새우 샐러드를 얹은 요리, 게살찜과 연어 스테이크 등을 맛볼 수 있죠. 이 광경을 보면 이 곳이 경기장인지 고급 레스토랑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센터코트 외에도 19개 코트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식당과 매점이 윔블던을 찾은 이들을 유혹합니다. 올 잉글랜드 클럽 전체에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총 18군데에 달합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곳곳에서 음식과 마실 것을 즐기는 풍경은 ‘도떼기 시장’이나 다름없습니다. 윔블던 대회가 유럽에서 열리는 단일 스포츠 행사 중 가장 큰 먹거리 타운이라는 대회 조직위원회의 주장은 과언이 아닌 셈이죠. 그 요리품목만 3,000가지에 달하고 요리사 220명을 포함한 1,800여명의 직원이 윔블던 관중들을 맞이합니다.
2주의 대회 기간 동안 팔리는 음식의 양도 어마어마합니다. 평균 35만잔의 홍차와 커피, 23만잔의 칵테일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허기 진 배를 채워 줄 샌드위치는 19만개, 영국 대표 스낵인 피시 앤 칩스는 3만개 가까이 판매됩니다. 50여만명의 관중이 대회 기간 동안 소비하는 양입니다.


하지만 이 수많은 음식들 중 잔디코트, 흰 색의 유니폼과 함께 윔블던을 대표하는 먹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신선한 딸기에 하얀 크림을 얹은 ‘딸기 크림(strawberries and cream)’입니다. 지난해에만 28톤에 달하는 딸기가 판매됐고, 이 방대한 수치는 윔블던 박물관 입구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10개 정도의 딸기를 그릇에 담아 새 하얀 크림과 설탕을 부어주는데, 평균 11만2,000여 그릇이 팔리고 크림은 7,000리터가 소비됩니다. 가격은 2.5파운드로 한화로 4,300원 정도입니다.
전통과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대회답게 이 딸기크림을 판매하는 데도 윔블던은 특별한 원칙을 고수하죠. 반드시 영국 남동부 켄트 지방에서 자란 딸기를 고집하는 데다가,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하루 전에 딴 딸기만을 쓴다고 합니다. 딸기는 오전 5시30분 올 잉글랜드 클럽에 도착해 판매대로 나갈 준비를 합니다. 거의 일년에 가까운 장기 계획이 필요한 일인 데다가 대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에는 매일 전쟁 같은 심야 배달이 펼쳐집니다.
윔블던 결승전 관람, 센터코트 배경으로 셀카 찍기, 머레이 마운틴에서 햇살 즐기기 등 당신이 이루고 싶은 윔블던 목록에 ‘딸기 크림 맛보기’를 추가하면 어떨까요?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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