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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갈피 못 잡는 무역협정의 실상

입력
2015.07.0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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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아우르는 무역협정이 수년 동안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지역간 무역협정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전세계 교역에 큰 영향을 미칠 두 개의 대형 협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중국이 빠졌지만 세계 생산의 40%를 담당하는 11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고 있다. 또 미국이 유럽연합과 함께 추진하는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이 성사되면 세계 교역량의 절반을 책임지는 거대 자유무역지대가 탄생하게 된다.

무역협정은 더 이상 전문가와 기술관료만 논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TPP와 TTIP의 찬반을 두고 일반 국민들이 열띤 공개토론을 하는 모습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지자와 반대자의 생각은 너무 극명해 향후 전망에 대한 양측 주장을 혼동할 일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무역협정은 여러 동기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무역협정 옹호자들은 크게 두 가지 생각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각종 무역장벽을 줄이면 효율성과 전문성이 배가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시장접근이 용이해져 수출증가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알다시피 첫 번째 주장은 무역자유화에 대한 비교우위 입장이며 두 번째는 중상주의 입장이다.

하지만 두 주장은 궁극적으로 상호 모순적이다. 비교우위 관점에서는 무역을 통한 이득은 저렴한 제품을 수입할 때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는 수입하기 위해 수출을 포기할 수도 있다. 무역을 통해 모든 국가는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무역협정 자체가 일자리를 창출하지는 않으며 산업분야별로 일자리를 재분배하는 역할만 하게 된다. 반대로 중상주의 관점에서 보면 수출은 좋고 수입은 무조건 나쁘다. 수출을 확대한 국가는 이익이 나고 그렇지 않은 국가는 손실이 난다. 무역협정을 통해 새로 생긴 일자리는 다른 국가의 일자리를 없앤 만큼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무역협정이 일자리와 상호이익을 동시에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도 TPP와 TTIP 지지자들은 두 가지 주장을 동시에 호소하고 있다.

무역협정 지지자들은 정치적 관점에서도 TPP와 TTIP가 자유무역 질서 확립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역장벽 철폐와 규제완화가 나쁜 일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TPP가 체결되면 미국은 다른 나라에 좀 더 엄격한 지적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어 미국 기업의 특허 및 저작권 보유자에게 상당한 이득을 안겨줄 수 있다. 반면 과도한 특허권 행사는 혁신의 장애물이 될 수 있어 그 만큼 불확실성이 커지는 단점도 있다. 미국과 유럽이 TTIP를 성사시키면 비관세 장벽이 낮아져 자국 내 규제완화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와 수출업체의 이득이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 환경적 측면에선 이전보다 훨씬 더 부정적 효과도 커질 것이다.

두 협정에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별도의 사법절차를 규정한 투자자ㆍ국가분쟁 해결(ISDS) 조항이다. 즉 무역협정에 명백히 반하는 위반행위를 한 국가를 외국기업이 고소할 수 있는 법률시스템을 특별히 마련한 것이다. ISDS 지지자들은 이 조항이 법 제도가 정비된 미국과 같은 나라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제도가 미비한 베트남 같은 국가에는 투자를 촉진할 수 있기 때문에 회원국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북미와 유럽 선진국들은 ISDS 조항이 자신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면서도 ISDS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선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TPP와 TTIP는 역내에서 자유주의가 아니라 기업사냥과 같은 논리를 확산시킬 수 있다. 두 협정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모호한 대상이 있는데, 그 대상은 정작 어떤 조항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바로 중국이다. 미국과 유럽은 모두 자신들이 정한 규칙에 따라 중국과 무역을 하기 원한다. 중국을 배제한 채 이러한 규칙을 정하려 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자유주의 시스템으로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접근방식은 중국을 고립시키고 무역장벽을 차별하겠다는 신호로 간주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짚어볼 게 있다. 비밀유지 항목은 무역협정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대목이다. 협상 초안은 일반 국민이 볼 수 없도록 돼 있으며, 초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외부인사도 이를 누설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협상을 용이하게 하려는 정책적 판단으로 보이지만, 미국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은 “비밀주의가 정반대 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초안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제품 판매에 방해가 된다면, 과연 무역협정 자체가 바람직한 것인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개정안을 허용하지 않고 협정문에 명시될 최종 문구를 찬반 입법투표로 정한 것은 나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는 초안 내용이 공개됐을 때 가능한 일이므로 비밀유지 항목은 지금이라도 없애야 한다.

결국 무역협정을 통해 나타날 경제ㆍ정치적 결과들이 상당히 불확실하며 이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역협정 옹호론자들은 보호무역주의자와 회의론자들을 조롱하며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지금 우선 필요한 것은 논란이 되는 조항을 가감 없이 공개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이는 일반 국민들이 철저하게 검증할 수 있도록 협상 내용을 공개할 때에만 가능하다.

대니 로드릭 미국 프린스턴고등연구소 교수ㆍ경제학

번역=장재진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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