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ㆍ맞벌이 가족 많아 말하고 듣기만 겨우 익혀
피부색 탓 괴롭힘 당하다 적개심 쌓여 극단적 행동도
지난해 20만명 처음 넘어… 방치 땐 사회 갈등 핵으로
1990년대 중반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전개되면서 동남아, 중국 중심의 결혼이주여성이 크게 늘어 우리나라 다문화 가족은 79만여명. 그들의 자녀(만 18세 이하)도 지난해 20만명을 넘어섰다. ‘멜팅 팟(Melting Potㆍ인종의 융합 사회)’을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샐러드 보울(Salad Bowlㆍ단지 섞여 살 뿐인 사회)’의 불신과 반목, 차별에 속병을 앓고 있는 미국사회가 우리에게 오버랩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2050년이면 다문화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의 10%에 이르고(국토연구원 ‘그랜드 비전 2050’ 연구보고서 추산), 지금 청소년인 2세가 중ㆍ장년이 돼 3세를 키울 때 사회 갈등의 주요한 핵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조짐은 벌써 보이고 있다. 이미 다문화 2세의 경우 가정에서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다 언어 장벽과 차별, 그로 인한 소외감, 경제적 빈곤 문제까지 겹쳐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문화가족 자녀 80여명이 다니는 서울 A 초등학교. 이 학교 교사들에게 기피 학년은 1학년이다. 전교생의 30%에 이르는 다문화 학생 때문이다. 이 학교 교사 B씨는 “다문화 부모들이 일 하느라 아침에 일찍 나가 밤 늦게 들어와 자녀를 보살필 수 없는 게 큰 문제”라며 “인성의 기본이 되는 가정교육이 제대로 안 되니까 특히 1학년은 기본 생활습관이 전혀 안돼 있어 힘들다”고 토로했다. 숙제는 당연히 해오지 않고,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건 약과다. 수틀리면 고함을 지르고 운다거나, 친구들에게도 화를 잘 내는 등 막무가내인 경우가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심하다. 이들 중 대부분이 한부모 가정이거나 지방으로 돈을 벌러 간 부모 대신 할머니 손에 키워지고 있다.
대부분 공부와도 거리가 멀다. 자칫 학교 밖으로 튕겨나갈 위기의 아이들이 많다. 말하고 듣기는 되지만 쓰기, 읽기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학습어휘를 잘 모른다. 예를 들어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라는 문제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데 ‘물음’이 무슨 뜻이냐고 되묻기 일쑤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엄마와 함께 사는 2학년 C군은 하루 종일 책상에 엎드려 잔다. 엄마는 한국어를 전혀 배우지 않은 채 한국에 왔고, 한국인 아빠는 돈을 벌러 지방에 가 있다. 엄마를 통한 언어 자극을 받을 수 없었다. 어휘가 떨어지니 학습의욕을 가지기 어렵고, 학습부진이 반 친구와의 갈등과 학교부적응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C군이 갇혀 있다. 김중훈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은 “애들이 웃으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수업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무기력해진다”며 “이런 학교부적응은 학업 중단, 사회부적응으로 이어지는데 그 수가 급속도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우려했다.
자연 마음에 병이 든다. 특히 한창 예민한 시기의 다문화자녀 대부분은 정체성 혼란을 심하게 겪는다. 불법체류자 신분인 파키스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고등학교 1학년 E군은 “저희는 인간이 아니에요.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에요”라고 말해 다문화 자녀를 보살피하는 시민단체의 상담 교사가 큰 쇼크를 받았다. E군은 정상적인 진학과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처지를 깨닫고 자포자기 상태다. 위로 두 명의 누나는 중학교를 중퇴한 채 집에서 부업으로 살림에 손을 보태고 있다.
피부색이 다를 경우 불쾌한 관심까지 받게 돼 자존감 상실과 함께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중학교 3학년 F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태국 출신 엄마가 학교에 찾아오면서 다문화가족 자녀라는 게 학교에 알려졌다. 당시 F군은 창피해서 엄마를 피해 화장실에 숨었다. 친구들은 “야, 너네 엄마 얼굴이 까맣더라”고 놀렸다.
‘베트남’ ‘캄보디아’ 등 친구들의 흔한 놀림은 차별에 대한 인식과 함께 적대적 감정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김수정 세계로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은 “다른 외모 때문에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으면서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크다가 나이가 들수록 남을 많이 의식하게 된다”며 “특히 여학생들의 좌절감이나 우울감이 크다”고 말했다.
적대적 감정이 극단적 행동으로 표출된 사례도 없지 않다. 러시아 출신 엄마를 둔 G(당시 17세)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헬로 러시아”라는 놀림을 받고 왕따까지 당했다. 우울증을 앓고 가출을 일삼다가 중학교를 그만뒀고, 결국 2013년 서울의 주택가에 수 차례 불을 질러 형사처벌을 받았다.
다문화 자녀들의 방황 이면에는 가정붕괴와 한국인의 고질적인 배타성에 따른 외국인 혐오, 편견이 혼재돼 있다. 다문화 자녀를 포함한 저소득층 학생 대상 학습 멘토링을 하는 교육시민단체 아름다운 배움의 고원형 대표는 “다문화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빈곤과 가정붕괴”라며 “문화적 차이 이전에 한국의 빈곤 남성과 외국인 여성이 만나면서 이미 가정은 제대로 돌봄을 제공할 안정적인 환경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 남부 지역 초등학교의 한 지역사회전문가는 “다문화 자녀들에 대한 보호장치는 사실상 없다”며 “학교에 사회복지사가 있다면 찾아가서 사례 관리를 하는 수준이지 그 아이들을 전문적, 통합적으로 봐줄 수 있는 기관이 없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인권과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의식도 여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혜영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교수는 “낯선 이주민과 문화적 소수자를 우리 공동체 일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제도적으로서 차별을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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