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부총리 취임 1년에 내놓은 추경
구조개혁 핵심경제입법 성과 없어
재정확대로 시작, 재정확대로 끝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게 작년 7월16일이고, 일주일이 갓 지나 24일에 그의 첫 경제정책이 발표됐다. 7ㆍ24 대책은 냉각된 경제에 온기를 넣기 위해 총 41조원의 재정ㆍ금융자금을 쏟아 붓겠다는 것이었다. 추경은 아니지만 추경에 버금가는 통 큰 내수부양책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이번엔 ‘추경에 버금가는’이 아니라 진짜 추경이 나왔다. 투입규모 22조원에 달하는 역시 초대형 재정패키지다. 금년도 본 예산을 이미 충분히 팽창적으로 짰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나라살림의 골격을 수정하게 된 것이다.
경제가 이렇게까지 고꾸라지는 마당에 최 부총리의 1년을 두고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똑 같이 돈을 퍼부어야 하는 답답한 상황, 결과적으로 추경편성이 취임 1주년 세레모니가 된 딱한 현실. 최 부총리의 1년을 평가하는 데 달리 무슨 부연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온전히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겨내기엔 버거운 외부악재가 너무 많았다. 아베 정권이 작심하고 엔화약세를 밀어붙이는데, 중국경제가 갈수록 둔화하는데, 그리스사태가 계속 악화하는데, 무엇보다 상상도 못했던 메르스 바이러스가 국민경제를 초토화시키는데, 경제부총리인들 뭘 어찌 하겠나. 케인즈가 되살아나도 경기추락은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최 부총리의 1년이 실망스러운 건 그를 향했던 시장의 기대치가 워낙 높았던 까닭이다. 대통령 최측근 실세인 만큼, 재고 따지고 주저하다가 결국 타이밍을 놓치는 관료출신 경제부총리들과는 다른 돌파능력을 보여줄 것이란 소망이었다. 실제로 취임 초엔 그랬다. 재정건전성 악화나 가계부채 확대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력한 확장 드라이브를 펴면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부동산규제들을 망설임 없이 제거해나갔다. 최 부총리가 아니었다면 완고한 한국은행도 선뜻 금리인하카드를 뽑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강한 부총리’는 시장에 신뢰를 줬고,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격은 상승랠리를 탔다.
최 부총리는 이름에 ‘~노믹스’가 붙은 우리나라 유일의 경제부총리다. 이게 무슨 공식직함이나 칭호는 아니지만, 시장과 언론이 ‘초이노믹스’로 명명했다는 건 그의 리더십과 정책효과에 대한 기대의 표현이었다. 심지어 월스트리트저널까지 아베노믹스 옆에 초이노믹스를 거론했을 정도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돈을 푸는 건 그저 진통제일 뿐 결코 치료제가 될 수 없다는 걸 시장이 깨닫는 데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초이노믹스의 약발은 아베노믹스의 엔저공세에 무력화되기 시작했고, 시장은 좀 더 근본적 처방을 요구했다.
정말로 아쉬운 건 이 대목부터다. 최 부총리는 경기부양 대신 구조개혁론을 설파하기 시작했는데, 그 자체는 옳은 방향이었다. 하지만 합의여건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급하게 꺼내든 노동개혁카드는 노조 반발만 초래한 채 수포로 돌아갔다. 금융개혁은 느닷없이 핀테크로 치환되어 버렸고, 교육개혁은 첫 단추도 꿰지 못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등 경제입법도 국회 상임위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일차적으론 야당의 거부 탓이지만, 야당이 그런 게 어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박 대통령이 애초 현직 의원인 그를 경제부총리로 임명한 배경엔, 대야 관계도 숨통을 터보라는 뜻이 담겼을 걸로 짐작되는데 결과적으로 이 인사 취지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살리기를 위해 정말로 그렇게 중요한 법안이라면, 여당 원내대표 출신의 3선 의원으로서 최 부총리는 야당 대표를 열 번, 백 번 라도 찾아가 언성을 높이든 읍소를 하든 어떻게든 통과시켰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초이노믹스는 돈 푼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
최 부총리는 총선 출마를 위해 연말이전에 물러날 것이다. 여권사정 때문에 조기복귀설도 나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그에게 새로운 정책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단기경기부양으로 시작해 구조개혁으로 진화하려 했던 초이노믹스도 결국 단기부양(추경)으로 유턴한 채 막을 내리고 있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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