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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차별과 혐오, 무지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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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차별과 혐오, 무지의 산물이다

입력
2015.07.0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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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은 학력 · 소득 · 인격과 무관, 남녀가 학습한 사회적 행동서 비롯

性 구분은 행위 · 담론의 산물, 혐오 대상으로 여성을 타자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갑작스레 알려진 진보논객 한윤형씨의 데이트 폭력 사건으로 온라인 세상이 들썩거렸다. 사건을 폭로한 한씨의 전 여자친구 A씨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씨와 교제 중 수없이 폭행 및 그에 준하는 행동(술에 취해 발로 차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모욕적 언사를 퍼붓는)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로빈 윌쇼 지음·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일다 발행·331쪽·1만4,500원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로빈 윌쇼 지음·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일다 발행·331쪽·1만4,500원

이 사건을 접한 이들에게 최초의 충격은 ‘진보’ 논객의 여성 폭행이었다. 한씨는 기고글을 통해 페미니즘과 운동권의 도덕성에 대해 설파했었다.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씨는 낮에는 여성의 권리를 말하고 밤에는 여자친구를 걷어찬 이중인격자가 된다. 온라인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금세 “쓰레기다” “끝났다” 류의, 한씨를 겨냥한 단호한 판정으로 도배됐다. 충격이 한풀 꺾이자 화살은 A씨에게로 돌아갔다. “근데 여자애도 제정신이 아니네. 처음 맞았을 때 끝냈어야지.” 부지런한 몇몇이 과거 A씨가 했던 강도 높은 남성 혐오 발언을 찾아내 게시하면서, 사건은 ‘이중인격 쩌는 진보 논객과 맞을 짓 하는 꼴페미’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사적’인 일로 희석돼버렸다.

그러나 최근 번역된 책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에 따르면 이는 개인의 일이 아닌 명백한 사회 문제다. 데이트 강간, 즉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을 다룬 이 책은 1982년 미국 전역의 32개 대학에 재학 중인 남녀 대학생 6,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물이다. 출간된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유효한 이유는, 폭력이 발생하는 맥락과 피해자·가해자의 심리가 지금 한국 사회의 그것과 완전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책은 남자의 공격적인 성욕을 논하면서, 그것을 사회적 구성물이 아닌 생물학적 결과(본능)로 보는 데서부터 모든 것이 틀어진다고 말한다. 폭력과 강간은 가해자의 학력이나 인종, 종교, 소득 수준, 심지어 그의 인격에 대한 주변의 평판과도 무관하게 발생하며, 많은 경우 남녀가 학습해온 사회적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어긋난 남성성 강화 훈련 중 언어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성관계를 의미할 때 사용하는 ‘준다’ ‘가진다’ 등의 단어가 소년으로 하여금 여성과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게 만드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일체의 경계심이 없다. 남성의 성기를 의인화하는 일련의 단어들은, 성기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사고들에 있어 남성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

여성 역시 학습의 피해자다. 여성들은 강간과 폭력의 위험 앞에서 ‘드센 년’이 되지 않기 위해 이빨로 상대방을 물어 뜯거나 거친 욕설을 퍼붓는 행위를 자제한다. A씨의 경우는 반대였다. 그는 폭로를 망설였던 이유에 대해 “남자한테 맞은 년이 되는 게 무서웠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급진파를 자처하던 그가 실은 남자한테 발로 차이기나 하는 ‘한심한 여자’라는 걸 들킬까 봐 두려웠다는 얘기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 윤보라 외 6인 지음 현실문화 발행·256쪽·1만4,000원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 윤보라 외 6인 지음 현실문화 발행·256쪽·1만4,000원

사회가 우리에게 투사하고 때론 강요하는 이미지_남자, 여자, 페미니스트_들은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내면의 목소리로 바뀌고, 이는 폭력을 부추기거나 피해 사실에 입을 다물게 만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동시에 출간된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는 여성에 대한 폭력 중에서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지는 여성 혐오 풍조를 집중 조명한 최신 보고서다. 개똥녀부터 김치녀까지 한국 사회를 면면히 흐르는 여성 혐오의 역사를 통해 혐오라는 감정이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사회에 이토록 강력한 그늘을 드리게 됐는지를 필자 여섯 명의 글을 통해 점검한다.

윤보라씨는 여성 혐오글에서 강하게 풍기는 조작의 냄새에 주목했다. 한때 여러 커뮤니티에 등장했던, ‘여직원들에게 도넛을 선물했더니 먹지도 않고 전부 반으로 잘라놨다’며 올린 사진은 출처가 외국의 유머 사이트임이 밝혀졌다. 악의적인 각색자들은 거짓말이 들통나면 커뮤니티를 탈퇴해 버리고 남는 것은 ‘하여간 여자들이란…’류의 쯧쯧 소리뿐이다. 조작된 증거들을 원활하게 유통시키는 힘은 ‘유머’다. 여성 혐오글들은 통상 원색적인 분노가 아닌 유머러스한 언변에 실려 재미난 에피소드의 형태로 유통되기 때문에 여기에 핏대를 세웠다간 유머를 모르는 뻣뻣한 인간으로 낙인 찍힌다는 것이다.

정희진씨는 우리가 통상 여성, 남성이라고 인식하는 인간이 실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간다. 여성 혹은 남성이란 증거는 “성기 모양이나 출산력 여부가 아니라 젠더 이데올로기에 의한 행위와 담론의 산물”이라는 정씨의 주장에 따르면, 성별이 생기고 혐오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 혐오를 위해 성별 구분이 ‘필요’해진 셈이다. 여성이 세상 모든 타자의 은유라면, 우리 사회의 모든 남녀는 스스로 자문할 의무가 있다.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당연히 다수라고 생각하거나 소수와 다수를 구분하는 창조주로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타고난 자연스러운 권리인가?”

차별과 혐오는 이 무지를 동력 삼아 작동한다. 무지는 “몰라도 된다”는 사회적 인식으로 더 크게 몸집을 불린다.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남성, 여성이 아니라 “조직된 무지, 합의된 비윤리, 페르소나를 던져 버린 뻔뻔한 얼굴들”이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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