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NE뱅크' 등 핀테크 개척 선봉
장애인용 점자 문자 서비스 추진
문화콘텐츠 전담 부서 신설
영화에 잇달아 투자해 성공 거둬
‘기술 그리고 문화.’
IBK기업은행의 심장에는 흔히 통용되는 은행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DNA가 녹아있다. 2013년 말 금융권의 두꺼운 유리천장을 깨고, 국내 최초 여성 은행장을 꿰찬 권선주 행장이 이식했다. “은행 생활 37년간 제일 잘 하는 게 소통”이라는 권 행장은 기술과 문화를 금융에 절묘하게 접목시키기 위해 직원들뿐 아니라 관련 업계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다. ‘듣는 리더’가 이끄는 기업은행은 시나브로 주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기술금융의 선봉에 서다
최근 기업은행은 인터넷전문은행 수준의 통합플랫폼 ‘i-ONE뱅크’를 선보였다. 계좌이체, 조회 등 기존 스마트뱅킹 서비스는 기본이고, 화상 및 채팅상담, 맞춤형 상품 추천, 은퇴설계 및 자산관리까지 받을 수 있다. 짧은 점심, 늦은 퇴근 시간 탓에 은행지점 문턱 넘기조차 힘든 직장인들에게 ‘24시간 내 손 안의 은행’ 서비스는 단비다. 여기에 교통카드 충전, 바코드 결제, 간편송금 등 다양한 지급결제 서비스도 지원하니 금상첨화다. 여전히 생소한 핀테크(기술+금융) 개념을 눈 앞에 구현한 셈이다.
“핀테크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던 권 행장의 행보는 거침없다. 이달 중순 영국 런던에서 HSBC와 핀테크 분야 공동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한데 이어, 세계적 핀테크기업 육성기관인 ‘Level39’와 핀테크기업 ‘트랜스퍼와이즈’를 잇따라 방문했다. 창업기업과 금융회사, 투자자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어떤 신규 서비스가 가능한지 직접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자리였다.
기업은행의 핀테크 전략은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은행의 존재 이유에도 충실하다. 금융거래내역을 메시지로 전송 받는 서비스인 ‘IBK ONE 알림’에 창업오디션 수상업체인 ㈜닷의 ‘점자 스마트워치’ 기술을 접목해 시각장애인도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전자금융솔루션제공업체인 웹케시㈜와 공동사업도 추진 중이다.
영업현장 역시 빠르게 기술금융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지점 인근 고객에게 추천 상품 정보, 환율 우대 쿠폰 등을 스마트폰으로 자동 전송하는 ‘스마트 캐치’, 지점 방문 전 대기인 수 확인 및 순번대기표 발권까지 가능한 ‘PUSH알림’이 대표적이다.
문화가 돈이다
문화금융은 전임자가 시작한 일을 권 행장이 더욱 판을 키운 분야다. 전임자들의 색깔 지우기가 업계 관행인 걸 감안하면 권 행장의 경영방식은 남다르다 할 수 있다. 국내 은행 최초로 문화콘텐츠 전담부서(문화콘텐츠금융부)를 신설한 기업은행은 권 행장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영화 판의 ‘큰 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영화 ‘명량’에 5억원, ‘국제시장’에 6억5,000만원을 투자한 데 이어, 최근 개봉한 ‘연평해전’에는 30억원을 쏟아 부으며 메인 투자자 역할까지 맡았다. 30억원은 기업은행 설립 이후 단일프로젝트에 투자한 액수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투자한 영화들이 대부분 흥행에 성공하면서 기업은행의 수익률도 준수한 편이다. ‘수상한 그녀’(203%) ‘관상’(140%) ‘명량’(114%) 등은 100%가 넘는 투자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문화콘텐츠금융부 직원들은 복잡한 경제지표나 금융시장 동향 대신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의 대본과 콘티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투자 대상을 물색한다.
올해 기업은행이 문화산업에 투자한 금액은 5월 말 현재 1,590억원에 이른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2,500억원씩 총 7,5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대부분 중소기업보다 못한 영세기업에 가까운 콘텐츠기업들에 대한 지원, 부가가치가 높고 고용창출 효과가 큰 영화산업에 대한 앞선 투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는 게 기업은행의 설명이다. 여기에 영화 흥행과 연계한 예금상품까지 선보이면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경청하는 희망경영
권 행장이 지휘하는 기업은행의 경영철학은 ‘희망’이다. 희망의 영문(HOPE) 앞 글자를 딴 내실성장(Healthy), 열린 소통(Open), 시장 선도(Pioneering), 책임경영(Empowering)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우체국 소인 없이 익명으로 은행장에게 보내는 ‘소통엽서’는 조직 구석구석의 문제를 가감 없이 전달해 개선점을 찾는 촉매제로 활용되고 있다. 권 행장의 지론인 격의 없는 소통이야말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명인 문화와 기술 분야에는 더없이 귀중한 자산이다. 기업은행이 문화금융과 기술금융을 선도하는 건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고찬유기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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