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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가끔은 세로쓰기 어때요?

입력
2015.07.0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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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세로쓰기 책을 거의 볼 수 없다. 그래도 가끔 접할 때가 있다. 주로 집에 있는 옛날 책이거나 헌책방에서 구한 책들이다. 그걸 읽어내는 건 녹록지 않다. 눈이 워낙 가로쓰기에 적화되어 있어 그럴 거다. 행 포착도 쉽지 않고 가속도 잘 붙지 않는 탓에 의미 파악 또한 가로쓰기보다 더디다. 그래도 무슨 사명이라도 복받친 듯 안간힘 쓰며 읽어낼 때가 있다. 그럴 땐, 괜히 속이 후련해지고 뭔가에 새로 개안한 기분이 든다. 가로쓰기는 시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이른바 수평이동이다. 세로쓰기는 당연히 그 반대다. 시선만 그런 게 아니라 호흡도 바뀐다. 가로쓰기를 읽을 땐 숨이 가슴에 붙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조급해지는 감이 있다. 그러나 세로로 읽을 땐 숨이 배꼽 근처까지 내려 붙는 기분이다. 그만큼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고 책을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뱃심으로 삼키는 듯한 상태가 된다. 그게 심오함을 더한다면 과장이겠지만, 처음의 피로감을 견디고 나면 되레 더 차분하고 단단해진 상태로 독서에 집중하게 된다. 이해력이나 체화의 강도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무슨 의고주의자의 ‘꼰대질’처럼 여겨질지도 모르나, 호흡 패턴을 평시와 다르게 바꿀 수 있다면 세계를 보는 시선이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도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세로쓰기. 다섯 권에 한 권쯤은 시도해 볼 만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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