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인간방패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고 이라크전쟁의 포화 속으로 뛰어 들어간 동화작가가 있다. 박기범 작가는 10년이 흐른 후 이라크에서 목격한 전쟁의 참혹한 현장과 인연 맺은 사람들의 절절한 삶과 꿈들을 써내려 갈 수 있었다. 박기범의 글에 화가 김종숙은 37점의 유화로 화답했다. 화가로 노동자로 당찬 인생을 살아온 김종숙은 올해 초 인사동에서 속초의 삶과 그림책 ‘그 꿈들’ 원화로 개인전을 열었다.
캔버스 위로 꾸덕꾸덕 말린 생선 비린내가 전해져 오고, 삭막한 이라크의 모래바람의 불어온다. 건강한 노동으로 생활하며 간절히 작업한 흔적이 화면 위에 거친 손자국처럼 묻어 있다. 이 그림책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네 개의 시점에서 전쟁을 이야기 한다.
작가가 만난 평범한 이라크 사람들,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 심각한 대의를 말하는 권력자들, 그리고 멀리서 전쟁을 뉴스로 전해 듣는 세상 사람들이다. 가난으로 운동화를 신어본 적도 없지만 기름배달을 하며 축구선수를 꿈꾸는 알라위, 신혼의 달콤한 꿈에 젖은 하이달, 자식손자들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게 마지막 소원인 무스타파 할아버지. 그들의 소박한 삶과 꿈이 열거된다. 한편 먼 나라 아이들을 위해 참전한 마이클, 트럭운전을 하던 스미스 역시 인정받는 군인이 되기 위해 전쟁터로 떠나온 사연을 얘기한다. 권력자들은 이라크 사람들을 독재자로부터 구해내고 자유와 평화를 돌려주겠다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전쟁을 시작한다.
어느 날, 검은 밤하늘로 불빛들이 쏟아지고 굉음과 함께 도시곳곳에서 불꽃이 타오른다. 집이 흔들리고 삶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알라위는 다리에 파편이 박힌 것도 잊은 채 이웃에게 도움을 청한다. 처참하게 찢겨진 가족들의 육신이 사방에 널려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시각, 초등학교 선생님을 꿈꾸던 군인 마이클은 독재자가 무기를 숨겼다는 목표지점에 완벽하게 폭탄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그곳은 아이들이 모여 있던 초등학교 건물이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이클은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둔다.
전쟁으로 죽어간 이들은 단지 사망자 숫자로만 기록되어 뉴스로 전해진다. 전쟁이 남긴 것은 폐허로 변한 도시와 살아남은 자들의 미움과 분노, 그리고 또 다른 전쟁의 씨앗뿐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강자들이 끝없이 만들어내는 정의의 명분으로 또다시 수많은 꿈들이 스러져 갈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마주할 수 있고 함께 슬퍼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우리가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임을 이 책은 아프게 말하고 있다.
소윤경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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