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서울대 교수
“대학 내 사제간 성추행 사건은 교수가 자신을 ‘스승’이라기보다 ‘연구자’로 여기는 분위기도 한몫 합니다.”
이번 1학기를 끝으로 정년을 맞는 이정재 서울대 전 교수협의회장(조경시스템공학부)은 3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잇따라 불거지는 대학 내 성추행 논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교수는 15년 전 학생부처장 시절 서울대에 처음 ‘성희롱성폭력상담소’를 만든 주인공이다. 당시만해도 성폭력과 달리 성희롱은 그 정의가 모호했는데 ‘피해자의 합리적, 주관적 판단에 따른다’는 기준을 세운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강의실 한 칸 규모였던 상담소는 지금은 학내 인권문제 전반을 다루는 ‘서울대 인권센터’로 커졌다.
이 교수는 동료 교수들이 성추행 등으로 불명예스럽게 캠퍼스를 떠나는 상황에 대해 “법원이 무거운 처벌을 내린 것은 ‘교육자는 일반인과 다른 잣대에서 평가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가 투영된 것”이라며 “어느 때보다 대학가의 자성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학 성추행 사건의 근본 원인으로 제자 훈육보다 연구 업적을 중시하는 대학평가 관행을 지목했다. 그는 “성추행 가해 교수들 중에는 해당 분야에서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적지 않은데 ‘연구만 잘 하면 된다’는 그릇된 인식이 스승의 역할을 망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대학이 중징계를 내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지도자의 소양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논문 작성뿐 아니라 학생 지도 등 정성적인 부분을 교수 평가요소에 반영하거나, 임용시 인성면접을 도입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994년 서울대 농공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한 그는 ‘외국에 시장을 개방하면 식량주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통념과 달리 시장개방은 국내 농업에 필수불가결하며 세계 진출의 기회라는 것이 지론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이 교수는 “한국의 쌀 자급률은 100%일지 모르나 일상을 지배하는 밀이나 가축 사료까지 본다면 곡물 자급률은 22% 수준에 그친다”며 “우리 먹거리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더 많은 국가와 교류해 안전성을 보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농학(農學)은 기존의 품종 연구 등 작물학뿐만 아니라, 산업법이나 국제통상학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퇴직을 앞둔 이 교수의 마지막 바람은 한국 사회가 눈 앞의 이익을 지양하고 대학의 독립성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 쓸모 있는 학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나 변해왔습니다. 대학 스스로 다양한 전공을 육성하며 인류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줄줄 알아야 합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