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사내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플래시 불빛이 쏟아졌다. 얼굴 위 주름은 굵었으나 일흔을 앞둔 외모는 아니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터미네이터5’)의 한 대사처럼 피부만 노화했을 뿐 에너지는 30년 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터미네이터’ 아널드 슈워제네거(68)가 2일 오전 서울 논현동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날 개봉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의 홍보를 위해 1일 내한했다. 함께 출연한 여배우 에밀리아 클라크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슈워제네거는 ‘터미네이터5’에서 기계군단에 저항하는 여전사 사라(에밀리아 클라크)를 돕는 로봇 T-800을 연기했다. 컴퓨터그래픽에 기대 1984년 개봉한 ‘터미네이터’ 1편 당시의 외모도 잠시 나오지만 세월이 얼굴에 새겨진 로봇의 모습을 주로 보여준다. 사라와 부녀 같은 관계를 맺고 나이까지 먹는 로봇의 모습이 참신하게 다가온다. 그는 “다음 영화로 꼭 서울에 돌아올 것(I’ll be back)”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을 방문한 소감을 말해달라.
슈워제네거(슈)=한국은 여러 차례 방문했다. 영화 홍보를 위해 왔고 휴가로도 찾았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일 때 기업인 100여명과 함께 방문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지운 감독과 영화 ‘라스트 스탠드’를 작업하기도 했는데 훌륭한고 멋진 감독과 일할 수 있어 기뻤다. 다시 한국을 방문하니 매우 기쁘다. 한국을 처음 찾은 클라크에게 이 아름다운 도시(서울)의 여러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
-사라의 아들 존 코너가 로봇으로 등장한다. 파격적인 시나리오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슈=처음 또 다른 ‘터미네이터’ 영화 출연을 제안 받았을 때 많은 기대를 가졌다. 동시에 그런 제의는 좋으나 분명하게 시나리오와 스토리가 훌륭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2년이 흐른 뒤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봤는데 창조적인 플롯과 서스펜스, 다양한 감정, 여러 액션 장면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뻤다. 그래서 기꺼이 역할을 맡겠다고 했다. 이번 영화에는 내가 보고 싶었던 터미네이터가 등장한다.
-다음 ‘터미네이터’에도 출연할 것인가?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슈=지금은 ‘터미네이터5’만 생각하고 싶다. ‘터미네이터5’가 얼마나 사랑받는지에 따라 다음 영화가 만들어질지 결정될 것이다. 팬들이 충분히 기대하고 보고 싶어하는 수요가 있어야 만들어진다. ‘터미네이터’는 내 이력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코난’에 출연한 뒤 선택한 작품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영웅이 아니어도 매우 멋진 역할이라 반했다. ‘터미네이터’ 덕분에 커리어가 발전했고 대규모 액션영화 출연이 가능해졌다. 기계이면서도 인간적인 요소가 있는 캐릭터라 정말 매력적이다.
-‘터미네이터’가 왜 지속적으로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나?
슈=사람들이 공상과학 영화로서의 특징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시간여행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미래에서 과거로 와서 미래를 바뀌는 내용을 좋아하는 듯하다. 터미네이터의 파괴력에도 마음이 끌리는 모양이다. 1편에서 정말 많은 걸 파괴했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로봇을 은근히 따르고 싶은 심리가 있을 것이다. 터미네이터의 완벽한 전투력에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 것 같다.
-린다 해밀턴이 강인한 인상을 남긴 사라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가?
클라크(클)= 너무나 큰 부담을 느꼈다. 그래도 꼭 맡고 싶었다. 해밀턴이 보여준 상징적 역할이 내게 너무나 많은 영감을 줬기 때문이다. 처음 제안 받았을 때 뛰어올라 잡듯이 승낙했다. 너무나 사랑했던 캐릭터이나 내가 했을 때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보일지 두려움도 있었다. 이번 사라는 이전 사라가 경험했던 인생과 다른 경험을 지녔다. 터미네이터가 부모를 죽이고자 했던 과거가 있어서 이전 사라와 동일할 수 없다. 그래도 본질적인 사라의 특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했다. 액션이 꽉 찬 스펙터클 영화에서 중심을 잡아준 것이 사라와 T-800의 부녀와도 같은 애틋한 관계다.
-정치가 그립지 않은지? 연기와 정치의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
슈=정치가 그립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연기하는 것을 아주 즐긴다. 정치인과 배우는 아주 다른 유형의 직업이다. 정치인은 공직자로서 국민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액션)배우는 이 벽에서 저 벽으로 던져지는 일을 한다. 관객이나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공통적이다. 모든 사람이 즐기고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같다. 두 가지 훌륭한 직업을 가져서 매우 기쁘고 행운으로 생각한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일할 때 정말 행복했다. 다시 배우 생활하게 된 것도 기쁘다. 훌륭한 연기자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그 누구와도 내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다. 보디빌더를 거쳐 배우로, 배우에서 주지사로, 그리고 다시 배우로 활동하는 것은 정말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 ‘나는 늙었으나 쓸모 없지 않다’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배우로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슈=이 대사가 누구에게나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 장점도 많으나 나이가 들어서 좋아지는 것이 오히려 많기도 하다. 나이가 많아진다고 해서 끝나거나 효과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와인이나 시가나 차가 오래돼서 더 멋져지는 경우는 많다. 나도 이 대사가 아주 멋있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연기할 때 이 대사를 말하며 많은 기쁨을 느꼈다.
-슈워제네거는 배우로서도 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나? 이병헌과 연기호흡을 맞춘 기분은 어떠했나?
클=정말 나는 행운아다. 이번 영화를 통해 훌륭한 배우들과 작업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슈워제네거다. 내가 자라면서 봐온 배우였다. 아주 멋졌지만 동시에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보니 사람을 편하게 하는 능력을 지녔더라. 연기하는 것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이병헌은 너무나 멋진 배우다. 추가적인 특수효과 사용 안 해도 될 정도로 멋진 몸 움직임을 보여줬다. 처음 이병헌과 연기할 때 이 사람이 정말 연기를 하고 있나 생각할 정도로 실감이 났다. 나중에 또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만들어지면 이병헌이 합류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터미네이터’ 시리즈 두 편이 더 만들어진다고 한다.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
슈=난 매일 운동을 한다. 어제 서울의 호텔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이 45분 동안의 운동이다. 오늘 새벽에도 4시30분에 일어나 1시간 동안 운동을 했다. 그러니 30년 전이나 20년, 10년 전에 비교해도 액션 연기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 이번 영화를 찍을 때 감독의 요청으로 더 많은 노력을 했다. 1984년 터미네이터의 몸 크기랑 동일하게 나와야 한다고 해서 체중을 8~10파운드 늘려야 했다. 평소보다 두 배 더 많이 운동을 했다. 식사와 수면처럼 매일 운동을 한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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