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예상대로 맹탕으로 끝났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였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 한없이 움츠러드는 검찰의 한계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당초 “좌고우면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다짐만 없었어도 이토록 허탈하지는 않았을 게다. 검찰은 부끄러워야 해야 한다.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를 불구속기소 한다고 밝혔다. 이게 전부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리스트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뒤 수사에 착수한 지 82일 만에 내놓은 결과가 고작 이 정도다. 이 전 총리와 홍 지사의 경우 금품전달자와 목격자는 물론 물증도 다수 있었다. 초보적인 수사력만으로도 혐의를 밝혀내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성완종 수사의 핵심은 대선자금 의혹 규명이다. 공직자의 개인적인 금품수수를 단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정한 돈에 의지하는 후진적인 선거문화를 혁파하는 것은 더욱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검찰은 처음부터 물증이나 목격자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성 전 회장이 전달한 돈의 액수가 리스트에 기재돼 있고 죽기 전 인터뷰에서 증언까지 남겼다.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한 구체적인 진술도 나왔다. 그런데도 검찰은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 같은 최소한의 수사기법도 활용하지 않은 채 ‘혐의 없음’이라는 결과를 내놨다. 검찰이 대선자금을 밝혀내기 위해 한 일이라고는 뻔한 질문이 담긴 서면질의서를 보낸 게 고작이다. 수십 명의 수사 인력을 동원해 특별수사팀을 꾸린 게 결국 시늉에 불과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의혹의 몸통에 손도 못 댄 검찰이 막판에 리스트 밖의 인물을 수사한다고 나선 것은 이런 부실수사를 가리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 검찰은 노건평씨를 소환 조사해 성 전 회장으로부터 특별사면 청탁 대가로 5억 원을 받은 단서를 확보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불기소 한다고 밝혔다. 2006년에 미화 10만 달러를 받은 의혹이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서면 조사한 것과 비교하면 당연히 형평성 의혹이 일만하다. 이번 검찰 수사가 공정성과 형평성을 잃었다는 사실은 성 전 회장 측근 2명이 구속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돈을 받은 사람들은 멀쩡히 살아남고 엉뚱하게 폭로한 쪽만 처벌받은 셈이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총체적 부실 수사로 판명 났다. 또다시 검찰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부실 수사를 납득할 국민이 아무도 없다. 특검이 불가피해진 이유다. 이제 정치권은 당초 약속대로 특검을 논의해 제대로 된 실체 규명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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