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커리어그랜드슬램 첫 선수
대회 3연패 등 위대한 업적에도
예절 문제로 50년 후에 인정 받아
‘그는 정상(top)에 있지만 최고(best)는 아니다.’
1934~36년 윔블던 남자단식을 3연패했던 프레드 페리(영국ㆍ1995년 사망)는 영국 테니스계에서 영웅보다는 악동에 가까웠다. 선수의 예의범절과 겸손함을 강조하는 윔블던에서 페리의 무례한 언사나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태도는 그의 뛰어난 업적까지 지워버렸다.
페리의 이름 뒤에 ‘유령(ghost)’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은 이유다. 그가 테니스 영웅으로 인정 받지 못했던 세월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다. 페리가 마지막으로 윔블던에서 우승한 이후 앤디 머레이(28ㆍ영국)가 2013년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기 전까지 77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도 페리의 유령이 잠들지 못한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패션 브랜드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페리는 테니스 선수로서는 최고의 위업을 성취한 영국인이다. 그는 테니스에서 커리어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첫 번째 선수이기도 하다. 고작 26세의 나이에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은 물론 윔블던 3연패를 포함해 메이저 통산 10승을 거두며 그랜드슬램을 두 번이나 석권했다. 영국의 데이비스컵 4연속 우승(1933~36년)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화려한 이력을 나열해 보면 페리가 영국 테니스의 토대를 닦은 선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페리가 이런 공로를 인정 받기까지는 반백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페리는 1938년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주했고, 패션 사업을 일으키면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페리와 영국 테니스계의 불화도 이때부터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1984년 페리가 윔블던에서 첫 우승을 거둔지 50년 만에 영국 윔블던 올 잉글랜드 클럽 센터코트 앞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리고 그 해에 2,000명의 영국인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20세기 영국 최고의 스포츠 선수’로 뽑히며 과거의 설움을 씻었다.
현재 페리는 승리와 명예를 상징하는 월계관 모양의 로고로 더 유명하다. 월계관 로고가 박힌 페리의 의류, 운동화 등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윔블던에서 우승을 거뒀지만 윔블던에 동상이 세워진 사람은 페리 뿐이다. 윔블던=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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