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적으로 순종ㆍ잡종 의미 없어
만들고 싶은 외형대로 이종교배 뒤 근친교배로 모양 유지한 게 순종
부자연스런 외모 탓에 질병만 얻어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모(36)씨는 최근 3년째 키우는 강아지와 함께 공원에 나갔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공원에서 마주친 짧은 다리의 사냥개 닥스훈트가 김씨의 개를 향해 짖어대자 해당 강아지의 주인은 “우리 개가 같은 순종에게는 얌전한데 잡종한테만 사납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개는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시츄와 말티즈의 잡종견이다. 양쪽 눈 주변에 검은 털이 난 시츄와 달리 오른쪽 눈만 검정색 털로 덮여 있다. 김씨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일텐데 왜 잡종견을 비하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터넷 애견 커뮤니티에선 믹스견(잡종)을 데리고 애견 카페에 출입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그만큼 순종 개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는 뜻이다.
잡종에서 나온 순종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현재 하나의 품종으로 인정받은 순종견도 거슬러 올라가면 서로 다른 종간 교배를 통해 만들어졌다. 이웅종 천안연암대학 동물보호계열 교수는 “동물학적으로 볼 때 순종ㆍ잡종 구분은 의미가 없다”며 “서로 다른 종을 교배시켜 나온 잡종견의 특정 형질을 정착시킨 것이 순종”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털이 길고 귀가 쫑긋한 잡종끼리 교배를 계속 하면 10~20세대 뒤에는 긴 털과 쫑긋한 귀가 고유의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300~400종에 이르는 개들은 늑대에서 분류돼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소형 수렵견인 닥스훈트는 기원전 7,000년부터 존재했던 이집트의 살루키가 먼 조상이다. 교배를 통해 살루키→아프간 하운드→세인트 허버트 하운드→닥스훈트 순으로 품종 개량이 이뤄지면서 하나의 견종으로 정착했다. 불독 역시 사자개로 불리는 티베트 마스티프에서 나왔다.
유전병ㆍ고질병에 시달리는 순종
산업화 이전까지 이런 품종개량은 구조ㆍ탐지 목적의 사역견, 사냥감을 찾는 조렵견, 목장에서 소ㆍ양떼를 관리하는 목양견 등 특정 목적을 갖고 이뤄졌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과 기능이 줄면서 품종개량은 이후 외형적인 측면에 맞춰졌다. 그 결과 순종견은 유전병에 고질병까지 앓게 됐다.
순종견의 유전병은 특정 형질 정착을 위해 근친끼리 교배시킨 결과다. 열성 형질이 발현되면서 병을 앓게 되는 것인데, 영국 캠브리지대 수의학과에 따르면 말티즈는 잠복고환ㆍ혈우병ㆍ갑상선기능저하증 등 12가지, 시츄는 유방종양ㆍ요결석 등 10가지, 푸들(미니어쳐ㆍ토이 푸들 포함)은 림프부종ㆍ백내장ㆍ부신피질기능저하증 등 45가지 유전병을 앓을 가능성이 높다. 박순석 대구 시지동물병원장은 “최근에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개의 특이한 외형을 더욱 특이하게 만드는 쪽으로 품종개량이 이뤄져 고질병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퍼그와 치와와다. 치와와의 경우 사람들이 작은 체형에 큰 머리ㆍ눈을 선호하다 보니 정수리까지 덮어야 할 두개골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박순석 원장은 “작은 충격에도 뇌가 큰 영향을 받고, 뇌수종ㆍ뇌부종에 걸리기도 한다”며 “사람의 욕심에 맞춰 의도적인 기형을 만든 결과”라고 지적했다.
퍼그는 기관지 질환과 호흡곤란을 앓는 경우가 많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이혜원 정책국장(수의사)은 “더욱 눌린 코를 갖도록 품종개량 하면서 이물질이 곧장 폐로 들어가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엔 고양이는 키우고 싶어하지만 털 때문에 꺼렸던 사람들을 위해 털 없는 고양이가 만들어져 마리당 수백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편하게 키우고 싶은 사람의 욕망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지고 체온조절이 안 되는 동물들의 고통은 뒷전으로 밀린다.
의도적 기형 지양해야
반려동물을 선택하는 건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사람의 기호ㆍ욕망에 맞춰 행해지는 ‘의도적 기형’까지 자유로 인정해야 할 지는 논란거리다. 이혜원 국장은 “인간의 취향이나 요구 때문에 순종견이 고통 받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고, 이웅종 교수는 “반려동물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생명의 존엄성 등을 생각하는 의식 수준은 아직 낮다”고 말했다.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4,300억원에서 2020년 6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박순석 원장은 “지난해 가장 작은 개로 선정돼 기네스북에 오른 치와와(키 9.65㎝)를 보면서 신기해하기 전에 왜소한 신체 탓에 다양한 질병을 앓게 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며 “반려동물을 들일 때 키우기 쉽고 귀엽다는 이유로 표준체형보다 작은 동물을 선호하는 것 역시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요가 있는 한 공급은 계속 된다. 순종의 비극은 그렇게 이어진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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