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그저 고맙고,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89) 할머니는 2일 고(故) 레인 에번스(Lane Evans) 미국 전 하원의원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에번스 전 의원은 미 하원의회가 2007년 7월30일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는데 초석을 다진 주인공이다. 1983∼2007년 미 일리노이주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이었던 그는 2001∼2006년 3차례에 걸쳐 일본의 사죄 촉구 등이 담긴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하는 등 미국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알렸다. 2006년 말 파킨슨병으로 정계를 은퇴, 지난해 11월 숨을 거둘 때까지도 그는 이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지지하고 응원했다.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88)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도 힘 없는 우리를 위해 힘써준 에번스 전 의원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머물고 있는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은 이날 에번스 전 의원을 기리기 위한 추모식을 개최했다. 추모식은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고문인 서옥자 컬럼비아칼리지 교수가 그의 활동상을 엮은 책 ‘그대의 목소리가 되어’의 출판기념회를 겸해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인연이 돼 에번스 전 의원과 오랜 시간 함께했던 서 교수는 에반스 전 의원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연, 미 하원의 결의안 채택 과정 등을 285페이지에 고스란히 담았다.
서 교수는 “파킨슨병에 허물어져가는 (에번스 의원의) 육신과 영혼을 보면서 그의 목소리가 돼 주고 싶었다”며 “이 책이 힘들고 약한 자들의 소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이태식 전 주미 대사도 참석했다. 위안부 결의안이 미 의회를 통과할 때 3월 주미 대사를 역임했던 이 전 대사는 그를 헌신적인 정치인으로 기억했다. 그는 “에번스 전 의원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옳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낮췄던 분”이라며 “피부도 국적도 다르지만, 그의 발자취는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남 시인은 추모시를 직접 써와 에번스 전 의원의 넋을 위로했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2006년 당시 에번스 의원이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심봉사가 심청이를 만난 것처럼 흉내를 내 할머니들을 웃게 해준 기억이 난다”며 “일본군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인물로 그를 추모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추모 출판기념회에는 나눔의 집 원장 원행스님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100여명이 함께 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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