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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로화의 미몽

입력
2015.07.0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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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안나 린드 스웨덴 외무장관이 쇼핑 도중 극우주의자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총리 감으로 거론되는 유력 여성정치인이었던 그는 열렬한 유로 찬성론자였다. 유로존 가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나흘 앞두고 발생한 사건으로 친유로 정서가 일기도 했으나 결과는 통화주권의 침해를 우려한 좌익성향의 반유로파 승리로 끝났다. 덴마크 국민도 유로를 도입하면 코펜하겐이 아닌 유럽중앙은행(ECB)이 있는 독일(프랑크푸르트)이 자신들의 복지를 좌지우지할 지 모른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 유로존에 참여한 최초 12개국의 정서도 각기 달랐다. 아일랜드는 오랜 식민지배를 당했던 영국에서의 독립이라는 상징적 의미로 파운드화의 종말을 원했고, 그리스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터키가 유럽에 편입하지 못하는 것을 조롱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같은 소국들은 국가신인도를 단숨에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보았다. 그리스 2차 구제금융으로 시끄러웠던 2012년에는 강력한 긴축을 요구하는 독일에 대한 반감이 유로존 내 헤게모니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화폐통합이라는 찬사를 들었지만 유로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많았다. 무엇보다 화폐는 통일하고도 이를 정책으로 뒷받침할 재정ㆍ금융은 회원국 주권에 맡기는 이율배반적 이기심을 드러냈다. 빈국의 취약한 재정이 부국으로 전이되는 것을 꺼린 결과다. 유럽의 덩치를 키우기 위한 징검다리로 보는 정치적 잣대에 경제논리가 묻힌 때문이다. 지금 그리스 사태에 대해 “선진경제권 최초의 국가부도”라고 떠들지만, 유로존이라는 껍데기를 벗기면 그리스는 애초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후속주자는 유로존 곳곳에 잠재해 있다. 경제력이 천차만별인 유럽국가들에게 똑 같은 지폐만 쥐어준다고 해서 유로가 달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보수파 논객 조지 윌이 유로의 운명에 대해 “안타깝지만 실패할 것”이라고 한 예측은 아직 틀리지 않았다. 유로존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부국이 빈국을 끌어안을 재정적 희생을 감내하느냐, 아니면 유럽 단일화폐라는 환상을 버리느냐다. 5일 치러지는 그리스 국민투표가 그 출발점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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