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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바다에 드러누운 절벽… 하얀 등대는 나그네를 부르네

입력
2015.07.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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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열도 끝자락에 위치한 연도, 국내 첫 6각형 구조 등대 이국적

연도 인근에 기러기 닮은 안도, 명품마을 지정, 탐방객 늘어 활기

전남 여수로 뻗어 나온 뭍자락의 맨 끝에서 망망대해와 당당히 마주하고 있는 섬 연도. 포말이 부서지는 해벽 위 하얀 건물이 105년 전 지어진 소리도 등대다. 큰 바다를 가로질러 온 배들에게 소리도 등대는 드디어 쉴 수 있는 항구가 멀지 않았음을 전해준 소중한 불빛이었다.
전남 여수로 뻗어 나온 뭍자락의 맨 끝에서 망망대해와 당당히 마주하고 있는 섬 연도. 포말이 부서지는 해벽 위 하얀 건물이 105년 전 지어진 소리도 등대다. 큰 바다를 가로질러 온 배들에게 소리도 등대는 드디어 쉴 수 있는 항구가 멀지 않았음을 전해준 소중한 불빛이었다.

숨막힌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한적하고 조용한 쉼을 고대하는 이들을 위해 남해안의 아름다운 섬을 추천한다. 망망대해를 떠돌던 그리움들이 굳어져 내린 듯한 순정한 섬들이다. 깎아지른 절벽 위 100년이 넘은 순백의 등대가 그리움들을 불러 모으고, 눈부시게 빛나는 백사장에, 오순도순 갯마을 사람들이 정을 나누고 사는 국립공원 명품마을을 품고 있는 작은 섬들이다. 전남 여수의 뭍자락 그 끄트머리에 떠 있는 연도와 안도의 이야기다.

남해 큰 바다를 휘감는 바람이 여수반도에 닿을 즈음 처음 만나는 섬이 솔개섬, 소리도다. 솔개가 비상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솔개 연(鳶)’자가 붙은 연도다. 섬사람들에겐 아직 옛 이름의 소리도가 더 익숙하다.

여수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금오열도 30여 개의 섬 가운데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 섬에서도 맨 아래, 남해와 맞닥뜨린 절벽에 소리도 등대가 있다. 1910년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세워진 이 등대는 국내 첫 6각형 구조 등대이기도 하다. 당시엔 최첨단이었던 기술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섬의 빼어난 경관과 작은 등대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분위기 덕에 많은 여행객들이 다시 찾고 싶은 등대 1위로 꼽힌 적도 있다. 이 소리도 등대는 노련한 어부가 경험에서 체득한 육감만으로 바닷길을 오가던 험난한 시절 한 줄기 빛처럼 남해의 파수꾼으로 자리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연도리를 중심으로 섬 북쪽에는 죄인을 제주도로 귀양 보낼 때 쉬어갔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역포마을이 있고, 남쪽에 덕포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큰 바다와 작은 바다의 접경지인 소리도 해역은 한 겨울에도 난류대가 영향을 미치는 회귀어종들의 월동지다. 잡히지 않는 어종이 없을 정도로 수산물이 풍성할 뿐 아니라 전국 최대의 감성돔 낚시터로 낚시꾼들에게 더 없는 찬사를 받는 곳이다. 해녀들의 물질도 활발한데 해녀들이 잡아 올린 싱싱한 자연산 홍합 등 해산물은 그 값을 매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소리도는 한때 2,000명의 주민이 살았지만 지금은 500명 남짓이 살고 있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멸치와 가자미, 쥐치, 낙지잡이가 주종을 이루는 어업과 보리와 콩, 녹두가 주작인 농사를 짓는다. 풍을 예방한다고 해서 이름 붙은 방풍 나물이 요즘 도시 사람들에게 각광받으면서 소리도 주민들의 짭짤한 현금 수입원이 되고 있다.

금오도의 다른 섬들이 다리로 연결돼 섬 아닌 섬으로 바뀌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외딴 섬으로 남은 소리도는 섬의 본질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연도사람들은 여전히 바다를 품고 땅을 일구는 잔잔하고 소중한 일상을 깨뜨리지 않는다. 바다에 살면서 바다를 존중하고 의지하며 바다가 내어준 선물에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들, 턱 없이 부족한 땅을 일구며 살지만 서로의 굽은 등에 기대고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연도 사람들이다.

연도는 옛날부터 뱃길의 요충지로 손꼽혔다. 제주나 먼 바다에서 여수로 돌아올 때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섬이다.

연도의 해안절벽과 갯바위들은 자연이 빚은 최고의 조각작품들이다. 기암괴석의 박물관이라 불릴 만하다. 오랜 세월 풍화 작용으로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는 기암절벽과 해식굴이 많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도 빼어남을 자랑한다. 용의 꼬리가 바다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형상을 빼 닮은 소룡단과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대룡단은 오늘도 쪽빛바다 한 가운데 잠들어 있다. 여기에다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치듯 깎아지른 절벽 아래 쌍둥이처럼 꼭 닮은 크기로 쏙 들어간 두 개의 굴, 옛날 네덜란드 상선이 보물을 숨겨두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솔팽이굴’이 있다. 지금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어 신비롭고 즐거운 상상이 보태지는 곳이다.

코끼리 바위는 이름 그대로 코끼리가 코를 바다 깊이 담그고 있는 듯 절묘한 형태로 여전히 바다에 웅크리고 있고, 바다 위에 외따로 떠있는 물개바위, 하늘담, 뱀대가리 기암괴석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연도와 가장 가까운 섬이 안도다.

안도는 섬의 모양이 기러기를 닮아 이름 지어졌다. 예전엔 기러기 안(雁)자를 썼다고 하나 지금은 편안할 안(安)자를 쓰고 있다. 금오도와 연도 사이에 위치해 안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도마을 입구는 마치 인공 호수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동도와 서도 2개의 섬 사이에는 200m쯤 되는 S자형 수로가 나 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남쪽 끝에 쌓인 모래언덕에 의해 두 섬이 연결돼 호수가 만들어졌다. 태풍 때 피항지가 됐던 곳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호수를 ‘두멍안’이라고 부른다.

안도의 풍광이 빼어난 동고지마을은 국립공원 명품마을에 이름을 올렸다.
안도의 풍광이 빼어난 동고지마을은 국립공원 명품마을에 이름을 올렸다.

마을 앞 긴 방파제는 산책코스로 그만이며 둘레길을 따라 해발 207m의 상산에 오르면 옛 봉수대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등산의 맛을 더해 준다. 마을 중앙에 자리 잡은 당숲과 당집은 오랜 동안 이 마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90년대 말부터는 당제도 시들해지고 후손들의 관심도 사라지면서 지금은 당집이 사라져 명맥이 끊겼다.

안도의 남쪽 갯가에는 이야포라 부르는 곳이 있다. 반달모양의 만(灣)으로 이루어진 해변은 80년대까지도 만 안에서 멸치잡이를 하는 멸치막이 있어서 항상 사람들이 붐볐다. 바닷물에 깎이고 다듬어진 몽돌과 둥근 자갈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북쪽의 해변과 함께 소나무와 어우러진 비렁과 넓은 바위들이 조화를 이룬 이야포는 아름다운 섬 안도의 최고의 풍경이라 할 만하다. 하얀 모래가 아름다운 백금포해수욕장도 가족이나 연인들의 조용한 가족피서지로 제격이다.

백금포해수욕장 좌측 언덕으로 보이는 마을이 동고지 마을이다. 1960년대 58세대 450여명이 살아 한집에 10명 내외의 출산으로 다산마을이기도 한 곳이다. 자원 고갈과 어장 황폐화로 뭍으로 하나 둘 떠나 지금은 12가구 18명이 살고 있다. 풍광이 빼어난 마을은 지난해 4월 국립공원 11번째 명품마을로 선정됐다.

12년전 귀촌해 마을공동체기업 명품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김성수(54)씨는 “도시로 나간 젊은이들이 하나 둘 마을에 들어오고, 명품마을이 되면서 탐방객 방문도 늘어 마을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면서 “섬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고 마을을 소개했다.

여수=글ㆍ사진 하태민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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