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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유토피아와 건축

입력
2015.07.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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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대한 불만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상상력을 낳곤 한다. 때로 상상에 그치지 않고 이를 현실로 옮기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 만만찮은 시도를 꾀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이상적인 사회를 꾸리려는 정치사회적 구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강력한 신념 체계와 동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물리적 환경을 새로운 이념에 맞게 빚어낼 기술과 재원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유토피아를 직접 건설해보려는 시도 대부분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이 이전에 이상향은 만들기보다는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여러 무릉도원 이야기는 대개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으면서 시작된다. 세상과 동떨어진 산 속을 헤매다 발견한 곳에는 소박하면서 자연의 본성에 맞는 삶을 누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이곳을 떠났다 다시 돌아가려 하면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기본 도식이다. 섬이 또 다른 이상향의 원형인 까닭도 마찬가지다.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단절된 공간에서 기존의 계급 질서에서 벗어난 공동체를 꿈꾸기에 섬만한 곳은 없다. 이때 이상향은 미래 지향적이기보다 과거 지향적이다.

이 구도는 새로운 도시를 한 순간에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쥔 근대건축가와 도시계획가가 등장하면서 바뀐다. 유토피아 건설은 공상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 되었다.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를 구분한 마르크스를 따라 공상적 유토피아와 과학적 유토피아로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건축가 중에서 유토피아 계획을 세워보지 않은 이는 없다. 집합주택 단지에서 도시 규모에 이르기까지 지난 세기 건축과 도시의 에너지는 유토피아 건설에 집중되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는 새로운 도시계획의 훌륭한 도화지가 되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를 당장 수용해야 하는 과제는 검토와 반성을 뒤로 미루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한국개발공사와 주택공사가 주도해 전국에 세운 산업도시와 아파트단지에는20세기 초 유토피아적 도시계획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정치사회적 제도와 경제적 구속이 여전한 채 만들어진 도시가 과연 유토피아인가 라는 의구심이 뒤따른다. 그러나 물리적 환경이 바뀌면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 세기의 유토피아는 예외 없이 이 믿음 위에 서 있다. 시각에 따라서는 폭력적이기도 한 거대한 구조물을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이었다. 세운상가가 대표적인 예다. 판자집이 즐비하던 1960년대에 종묘에서 필동을 가로지르는 1.2㎞에 달하는 콘크리트 건축물이 들어선 것이다. 아직 과거에 머물던 서울에 불시착한 미래였다.

지식산업의 중추인 출판인들이 꿈꾼 이상향도 있다. 파주출판단지다. 정부의 관료체제와 무관하게,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새로운 도시를 세우려는 시도였다. 건축가들의 초기 계획안과 출판인들의 결의는 순진하기 이를 데 없을 만큼 낙관적이다. 현재진행형인 유토피아가 있다면 판교다. 한국의 중산층이 욕망하는 이상향을 보여주기에 판교보다 적합한 곳은 없다. 아파트의 환금성을 포기하고 그곳에 들어선 700여 채의 단독주택은 한국의 중산층이 꿈꾸는 환상이 무엇인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토피아의 꿈은 현실과 만나 좌절되고 변형될 수밖에 없다. 출판인들의 이상향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문화도시를 자처하는 파주출판도시는 한국사회를 위한 어떤 이상향의 씨앗을 틔우고 있을까? 판교는 땅으로 내려온 아파트, 개인의 취향을 뽐내는 전시장인가, 아니라면 어떤 공동체를 키워가고 있는가? 낙관적 미래를 그리지 못하는 시대에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쉽지 않은 이 질문들에 대한 잠정적인 답을 찾는 전시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오픈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기획 건축전인 ‘아키토피아의 실험’이다.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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