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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유적지구도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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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유적지구도 세계문화유산

입력
2015.07.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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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2개·부여 4개·익산 2개

내일 한국의 11번째 유산으로 등재

한반도 고대국가 수도 모두 올라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하나인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전경. 639년 무왕 때 창건된 미륵사 터는 방대한 규모와 한국 석탑의 원형을 간직한 점에서 중흥기 백제의 문화적 역량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문화재청 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하나인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전경. 639년 무왕 때 창건된 미륵사 터는 방대한 규모와 한국 석탑의 원형을 간직한 점에서 중흥기 백제의 문화적 역량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문화재청 제공

5세기 후반~7세기 웅진-사비 시대 ‘백제역사유적지구’가 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5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로부터 ‘등재 권고’ 평가를 받은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이변이 없는 한 독일 본에서 진행 중인 세계유산위원회의 최종 등재 과정을 거쳐 한국의 11번째 세계문화유산이 된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충남 공주시 2개, 부여시 4개, 전북 익산시 2개 등 총 8개 유적으로 구성돼 있다. 웅진(공주)은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으로 밀려난 백제 문주왕이 475년 새 도읍으로 삼은 땅으로 백제역사유적지구에는 ▦왕성인 공산성과 ▦무령왕릉을 비롯한 송산리 고분군이 포함됐다. 사비(부여)는 538년 성왕이 백제 중흥을 위해 새로 세운 도읍으로 ▦왕성인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수도 동쪽 외곽의 방어를 위한 나성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제9호)을 포함한 정림사지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가 출토된 능산리 고분군이 있다. 무왕 때 남부의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해 제2수도를 세운 익산에는 ▦별궁터로 보이는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이 남아있는 미륵사지가 있다.

ICOMOS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도록 권고한 것은 ▦한중일 고대 왕국들 사이의 상호 교류를 통해 백제가 이룩한 건축기술과 불교의 확산을 보여주고 ▦수도 입지 선정, 불교 사찰, 성곽과 건축물의 하부구조, 고분과 석탑 등에서 백제의 역사, 내세관과 종교, 건축기술, 예술미를 보여주는 백제 문화의 정점이라는 평가가 뒷받침하고 있다. 과거 유산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진정성(authenticity)과 유산의 가치를 보여줄 요소가 충분히 남아있는지를 평가하는 완전성(integrity)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2000년 세계유산이 된 신라 수도 경주역사유적지구, 2004년 중국과 북한이 나누어 등록한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무덤군’과 함께 한반도 고대국가 수도 3곳이 모두 세계유산에 오르게 된다. ICOMOS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인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백제지구가 세계문화유산이 된다는 것은 백제의 역사가 세계 보편의 역사가 된다는 의미”라며 “백제가 고구려, 신라와 함께 남긴 문화유산이 오늘날 한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음을 세계인들이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ICOMOS는 등재 권고 보고서에 ‘보존관리계획에 백제역사유적지구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종합적 관광계획을 포함시키고 실행해야 한다’는 지적을 남겼다. 문화재청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하나로 묶어 복원하는 ‘백제 왕도 핵심유적 복원ㆍ정비사업’이라는 거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배병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물 대부분은 매장문화재라 남아있는 건축물이 매우 적고, 그마저도 백제의 유적이 아닌 개별 유적으로만 인식되고 있어 백제라는 왕국이 존재했음을 부각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관광자원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진정성을 유지하는 복원이 중요하다. 1993년 미륵사지석탑 건너편에 세운 동탑은 하얀 화강암을 기계로 깎는 바람에 기존 석탑과 부조화가 심하고 현대에 만들어진 석탑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실패한 복원’의 대표사례로 꼽힌다. 또한 지난 5월에는 무너진 서탑의 복원 방식을 둘러싼 논쟁도 벌어졌다. 애초에 9층 석탑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6층만 남아있던 이 서탑을 주민들은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9층으로 완전복원하자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연구검증 없이 9층까지 복원했다간 오히려 무너질 우려가 있다며 6층 부분복원을 고수했다. 배병선 소장은 “문화재 복원은 철저한 연구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1952년 설립된 이래 일본 고대 도성 나라(奈良)의 연구 복원을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한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를 예로 들면서 “유산의 원형을 철저하게 이해한 후에 복원해야 세계유산의 요건 중 하나인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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