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주가지수가 1884년 7월 3일 미국 뉴욕에서 탄생했다. 지금 주식 투자자들이 아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JIA)보다 2년 2개월 앞서, 역시 다우존스사의 공동창업자 찰스 다우(Charles Dow, 1851~1902)가 만든 거였다. 지수의 탄생으로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을 유혹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갖게 됐고, 금융자본은 시장과 산업자본의 동정을 감시할 수 있는 지표를 얻게 됐다. 19세기말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았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한 신문사 기자였던 다우와 동료 기자 에디 존스는 1883년 11월 ‘Customer’s Afternoon Letter’라는 신문을 창간한다. 말이 신문이지 달랑 두 쪽짜리 투자정보지였다. 그들의 전략은 특정 종목의 심층 정보로 기존 정보지들과 차별화한다는 거였고, 그 전략은 주효했다. 하지만 지면을 늘리지 않으면서 그들의 취약점을 보완해줄 묘책도 필요했다. 주식시장 전체의 수준과 동향을 단번에 보여줄 수 있는, 장황한 글이 아닌 무엇. 그게 당시 주식시장의 주력 종목이던 철도 주식(9개)과 증기선 주식(1개), 그리고 금융ㆍ통신사인 웨스턴유니언사 주식 등 11개 종목의 주가 평균인 ‘다우존스 주가지수’였다.
연필로 숫자를 적어 일일이 더하고 나눠 만드는 숫자였지만, 투자자들은 그 숫자로 시장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됐다. 어제와 오늘을 비교도 하게 됐고, 장ㆍ단기 동향과 변수를 ‘기술적으로’ 분석하게 됐고, 시장의 흐름을 예측할 수도 있게 됐다.
다우는 1896년 5월 저 지수를 철도평균지수와 산업평균지수로 나눴고, 89년 월스트리트저널을 창간했다. 이후 다우존스 지수는 시장 성장과 더불어 그 영향력을 키워왔고, 결과적으로 세계 금융자본주의 100년의 심박동을 기록해왔다.
12종목으로 시작된 산업평균지수는 1928년 이후 30개 종목으로 재편됐고, 여러 차례 편입종목을 바꾸면서 뉴욕증권거래소 3,000여 종목의 시황을 대표하는 지수로 군림해왔다. 시가총액 기준이 아닌 단순 주가 기준이라 지수 왜곡이 크고 편입 종목도 너무 적다는 오랜 비판에도 불구하고 뉴욕증시가 다우지수의 전통을 지켜온 까닭은, 흔드는 순간 사라져버릴 역사성이 거기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찰스 다우라는 한 거인에 대한 ‘낭만적’ 기림의 의미도 있지 않을까.
다우는 지수뿐 아니라 지수의 활용법도 전도했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지수를 근거로 시장의 다양한 패턴을 살피며 그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와 칼럼을 썼다. 과장일 테지만 어떤 이들은, 오늘날 첨단을 자랑하는 시장 분석ㆍ예측 이론들의 거의 모든 아이디어가 그의 글 속에 있다고도 말한다. 그는 숨지기 8개월 전까지 기사를 썼고, 은퇴하면서 자신이 일군 다우 존스사 지분 일체를 동료 클레런스 배런(Clarence Barron)에게 넘겼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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