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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는 동학사, 서에는 갑사...털레털레 둘러보세

입력
2015.07.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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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져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충남 공주 계룡산이 그렇다.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하나만으로 계룡산 등산로는 훤히 꿰뚫고 있는 듯하고, 남매탑 전설 하나로 갑사와 동학사는 모두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갑사 정문역할을 하는 강당에 걸린 현판이 하늘색보다 파랗다. 공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갑사 정문역할을 하는 강당에 걸린 현판이 하늘색보다 파랗다. 공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닭볏을 닮은 용머리 능선 따라 28개 봉우리와 7개의 계곡을 품고 있는 계룡산은 네 골짜기에 이름난 사찰을 품고 있(었)다. 동에는 동학사, 서에는 갑사, 남에는 신원사가 있다. 북측 구룡사 터에는 도예촌이 들어섰다. ‘절이 다 그렇지’한다면 겉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한 평가다. 제각기 다른 색을 품고 있는 4개 사찰을 따라 계룡산을 한 바퀴 돌아본다.

●계룡산 도사들의 성지, 신원사.

조선시대부터 산신제를 올리는 신원사 중악단. 공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조선시대부터 산신제를 올리는 신원사 중악단. 공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산신 100일 기도 도량'이라는 현수막이 이색적이다.
'산신 100일 기도 도량'이라는 현수막이 이색적이다.

전국에 명산이 많지만 계룡산만큼 도사와 어울리는 산도 없다. 설악산에서 도를 닦았다면 웃음거리가 되기 쉽고, 지리산에서 수행했다면 뭔가 좀 부족하게 들린다. ‘수능 100일 기도’현수막은 어느 사찰에서나 흔하다. 신원사 경내에는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현수막이 하나 더 있다. 이른바 ‘산신 100일 기도 도량’. 산신을 모시는 전각이 대웅전보다 유명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파격적이다. 그래서 신원사에서 눈 여겨 볼 건물은 중악단(中嶽壇)이다. 악(嶽)은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 큰 산’이다. 묘향산과 계룡산 지리산에 각각 상·중·하악단이 있었는데 지금은 계룡산 중악단만 남았으니,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곳도 이곳이 유일하다.

중악단은 외형부터 절간 건물이 아니다. 솟을대문 형식의 정문, 행랑채가 딸린 중문을 지나 중악단까지 3개 건물이 일직선을 이루고 주위로 담장을 둘렀다. 양반가옥 구조에 위인을 모시는 단묘(壇廟) 형식을 더했다. 궁궐의 축소판으로도 볼 수 있다. 붉은 기와 꽃 문양이 담장을 장식하고, 추녀마루에는 7개의 잡상(雜像)까지 올렸다. 고종 16년(1879)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지었다니 궁궐 양식을 더한 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악단에선 매년 음력 3월 16일 대규모로 산신제를 올리고, 매월 16일에도 일반법회 보듯 제를 올리고 있다. 참가자들은 주로 계룡산 인근 무속신앙인들이다. 갑사에서 신원사로 통하는 도로 주변에는 ○○암, ○○굿당, ○○도사 등의 간판을 내건 신당(神堂)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국립공원 안의 기도시설을 정비하면서 산속에서 나온 무속인들이 대부분 계룡산을 뜨지 못하고 인근에 자리잡은 결과다. 말로만 듣던 ‘계룡산 도사님’이 도처에 깔린 모습이 흥미롭다.

●으뜸 사찰 으뜸 숲길, 갑사

강당은 보통 대웅전 뒤에 위치하는데 갑사 강당은 정문에 자리잡았다.
강당은 보통 대웅전 뒤에 위치하는데 갑사 강당은 정문에 자리잡았다.
대적전 앞 승탑의 정교한 조각 받침
대적전 앞 승탑의 정교한 조각 받침
갑사 철당간은 통일신라시대 것으로는 유일하다
갑사 철당간은 통일신라시대 것으로는 유일하다
갑사의 으뜸은 역시 오리숲길
갑사의 으뜸은 역시 오리숲길

갑사는 말 그대로 으뜸인 절이다. 누군가는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으뜸이라지만 방문객들에게 으뜸은 누가 뭐래도 울창한 숲길이다. 주차장에서 사천왕문에 이르는 길에 수령 100년이 넘는 아름드리 거목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름하여 ‘갑사오리길’이지만 실제 길이는 5리(2km)에 못 미친다. 큰 나무가 뿜어내는 신선한 기운에 발걸음도 오리처럼 절로 느릿해지니 그리 불러도 좋겠다.

호젓하기로는 이 길 중간쯤에서 오른편으로 갈라지는 옛길이 한 수 위다. 개울을 끼고 걷는 비포장 흙 길이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오솔길 사이로 문득 큰 굴뚝처럼 당당한 철 당간이 버티고 섰다. 당간은 절 입구에 깃발을 매다는 장대였으니 애초 갑사의 시작은 이곳이었으리라. 지름 50㎝, 15m 높이의 철 기둥이 홀연히 하늘을 찌르고 있는 모습이 신라시대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곳에서 소박한 돌 계단 몇 개 오르면 작은 전각과 돌탑을 만난다. 대적전과 승탑이다. 비로나자불을 모시는 대적전엔 석가모니불을 모셨고, 무덤에 해당하는 승탑을 불전 앞에 세웠으니 불가 예절로는 모두 오류로 지적된다. 대적전도 원래 대웅전이 있던 자리였다니 이 또한 뒤죽박죽이다. 복잡한 사연까지는 알 길이 없고, 길손의 눈길은 연꽃모양 받침에 아기자기한 조각이 돋보이는 승탑에 머문다. 달리는 듯한 사자상 앞에 보일 듯 말 듯 정교한 사천왕상이 앙증맞다.

이곳에서 산모퉁이 돌아 계곡을 건너면 바위아래 조그만 석조약사여래입상이 발길을 잡는다. 작은 석굴암을 보는 듯하다. 이것도 갑사 뒤편 암자에서 옮겨온 것이란다. 예서 몇 걸음 옮기면 그제야 정문에 해당하는 강당이다. 세 글자 이름에 익숙하다 보니 그냥 ‘갑사’로는 뭔가 허전하다. 그래서일까? 강당에 걸린 현판은 ‘鷄龍甲寺(계룡갑사)’다. 푸른 하늘보다 진한 쪽빛 글자가 선명하다. 강당은 보통 대웅전 뒤편에 위치하는데 갑사 강당은 특이하게도 대웅전 앞을 지키고 있다.

그러고 보니 갑사에는 제자리 아닌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긋남에서 오는 불편함보다 자연스런 평온함이 느껴지는 건 순전히 시간의 힘이리라. 백제 때(420년) 창건해 수 차례 중건·소실·재건 과정을 거치면서 한치의 어긋남도 없다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을 게다.

●동학사, 사찰일까 사당일까

동학사 가는 길에는 일주문보다 홍살문을 먼저 만난다.
동학사 가는 길에는 일주문보다 홍살문을 먼저 만난다.
동학사 미타암.
동학사 미타암.
숙모전에는 단종과 김시습,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했다.
숙모전에는 단종과 김시습,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했다.

동학사 입구는 나무향기보다 부침개 냄새가 더 고소하다. 주차장에서부터 매표소까지 넘친다 싶을 정도로 음식점이 즐비하다. 대전과 가까워 계룡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번잡스럽지 않을 만큼 계곡은 넉넉하고 걷는 길도 포장이 잘 돼 있다. 대신 갑사에서 느끼는 아늑함은 포기해야 한다.

동학사에선 일주문에 닿기 전에 홍살문을 먼저 지난다. 능이나 묘(廟), 관아의 정면에 세우는 문이 사찰 입구를 지키고 있으니 의아할 수 밖에 없다. 동학사가 역사 인물을 기리는 3개의 사당을 품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숙모전과 삼은각, 동계사가 사찰 한 가운데 주인처럼 자리잡고 있으니 주객이 전도된 듯도 하다.

가장 먼저 생긴 동계사(東鷄祠)는 신라 충신 박제상과 고려 개국공신 류차달을 배향하는 곳이고, 삼은각(三隱閣)은 고려말기 성리학자 목은(牧隱)이색, 포은(圃隱)정몽주, 야은(冶隱)길재를 기리는 사당이다. 숙모전(肅慕殿)에는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처형된 사육신과 그들의 시신을 수습한 김시습, 단종의 위패까지 봉안하고 있다. 매년 수많은 유생과 후손들이 참가하는 제사도 올리고 있다니 동학사는 사찰(寺刹)이 아니라 사당(祠堂)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동학사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남매탑 전설에서 비롯한다. 목숨을 구해준 스님에게 여인을 선물한 호랑이의 엉뚱한 보은으로 끝내 의남매로 열반에 들 수 밖에 없었던 두 남녀의 전설이 깃든 상원암이 출발점이다. 큰 사찰에 딸린 암자들이 본사에서 떨어진 산중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동학사 가람 배치는 관음암 길상암 미타암을 거쳐 범종각과 대웅전으로 이어진다. 산을 훼손하지 않고 계곡 주변 좁은 터를 따라 불사를 지은 탓이다.

●철화분청사기의 부활, 계룡산 도자예술촌

구룡사 터에 자리잡은 계룡산 도자예술촌은 12작가의 공방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구룡사 터에 자리잡은 계룡산 도자예술촌은 12작가의 공방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전시장에선 서로 경향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한다.
전시장에선 서로 경향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한다.
교황 방한 때 충남도지사 선물로 선정된 양미숙 작가의 어문병.
교황 방한 때 충남도지사 선물로 선정된 양미숙 작가의 어문병.

계룡산 북측자락 반포면 상신리에도 구룡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공주에서 대전 유성구로 이어지는 32번 국도를 따라가다 동학사 입구 못 미쳐 하신리·상신리로 들어선다. 목 좁은 계곡을 한 굽이 돌면 하신리 마을이고, 끝날 것 같은 길을 다시 한번 돌면 상신리다. 계룡산 도예촌은 더 이상 찻길이 없는 계곡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 도예촌은 1992년쯤 청년 도예가들이 삶의 터전을 꾸리며 시작돼 지금은 12가구가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집집마다(대부분 부부가 함께 작업한다) 작품경향은 다르지만 도기의 이름은 모두 계룡산 철화분청사기다. 철분이 많은 흙에 쇳가루와 돌 가루로 그림을 그린 철화분청사기는 이곳에서만 만들기 때문에 도예인들 사이에선 그냥 ‘계룡산’이라면 통한단다.

14세기부터 이 일대에서 철화분청사기를 제작했다니 역사가 오래다. 일본 아리타 도자기의 도조(陶祖)로 추앙하는 이삼평(?~1655)도 반포면 출신이다. 지금은 국립공원지역으로 흙을 채취할 수 없고 교통도 불편해 딱히 입지조건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도 철화분청사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곳을 뜨지 못한다.

“도기 만드는 사람은 들어앉아 꾸준히 일해야 하는데, 이곳은 사방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어서 별로 나가고 싶은 맘이 생기지 않아요. 절터라서 아늑한 것도 좋고…” ‘웅진요’ 공방을 운영하는 양미숙 작가의 대답이다. 마을 정면 삼불봉에서부터 계룡산 기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이곳 도예 작가들이 직접 작업장과 집을 짓고 상신마을 주민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의 도움도 얻고 신뢰도 쌓았다. 예술촌으로 이름나면 전원주택이 들어서 땅값이 오르기 일쑤고, 카페와 식당까지 북적이면 결국 예술가들이 떠나는(쫓겨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반해 계룡산 도예촌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다. 도예촌 전시장에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곳에 모아 전시 판매하고 있다. 집집마다 특색 있는 작품을 내건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흥미롭다.

상신마을 중간에는 구룡사 당간지주만 남아 이곳이 절터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당간지주 뒤편 미완의 팔각정이 흥미롭다. 서울 소공동의 환구단을 본뜬 듯한 3층 팔각정은 20년 가까이 공사 중이란다. 한 개인의 집념이 어떤 모습으로 결실을 맺을지 궁금해진다.

공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여행 메모]

●계룡산 4개 사찰(터)을 둘러보려면 갑사와 신원사를 한 구역으로 묶고, 계룡산 도예촌과 동학사를 다른 구역으로 묶어 이동하면 편리하다. 신원사와 동학사 사이에는 연결도로가 없다. 수도권에서 간다면 당진대전고속도로 공주IC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4개 구역은 모두 등산로로 연결돼 있다. 남매탑까지는 동학사에서 가장 가깝다(약 1.7km). ●계룡산 도예촌(041-857-7331)은 가족과 단체를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작가 별로 운영하며 당일과 숙박프로그램이 있다. ●공주시는 ‘으뜸공주맛집’100개를 지정해 식당 입구에 표시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위생과 맛 평가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70여 개 식당이 지정돼 있다. 음식점은 시내권에 공산성 주변, 계룡산권에는 동학사 지구에 밀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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