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사상 첫 1,000만 영화 ‘실미도’는 영화계 내부의 평가와 별개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북한 주석궁을 공격하기 위해 흉악범 중에서 훈련받은 북파공작원들이 폭도가 되어 서울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인, 감춰진 실화가 던져준 충격이었다.
‘실미도’가 흥행하자 극우단체의 반발이 거셌다. 북파공작원이 모두 전과자 출신인 양 오도될 수 있다며 흥분했고, 영화 속 인물들이 북한의 혁명가요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에 몸을 떨었다. “불순하다”는 비난과 함께 영화 제작 관련자들의 신변에 위협이 가해졌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영화는 개봉하기 전부터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관람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쉽게 재단되곤 한다. ‘좌빨 영화’ ‘종북 영화’라는 낙인이 찍히고 ‘극우 영화’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영화 제작자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정치적 의도를 담은 것처럼 해석되는 일이 많다. ‘왕의 남자’(2006)는 참여정부의 정치 상황에 빗댄 것으로 분석되곤 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가 흥행했을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따랐다. 두 영화의 관계자들은 ‘꿈보다 해몽’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영화 ‘연평해전’이 200만 관객 고지를 넘어서며 흥행질주하고 있다. 평일 관객이 늘고 있는 추세라 대형 흥행작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연평해전’에 대한 보수ㆍ진보 진영의 시선은 정반대다. 잊힌 영웅들을 뒤늦게 조명했다는 평이 있고, 21세기판 ‘배달의 기수’라는 비하가 엇갈린다. 보수 매체는 명장면 운운하며 과도하다 싶게 ‘연평해전’을 부각시키는데 진보 진영에서는 완성도 떨어지는 영화가 알 수 없는 부당한 방법으로 흥행한다며 눈살을 찌푸린다.
물론 ‘연평해전’은 수작이 아니다. 사회비판적인 영화 ‘소수의견’이 훨씬 더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여러 평에도 동의한다. 다만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관객이 몰리는 것은 아니다. 국가권력이라고 해서 냉혹한 시장 논리에 거슬러 흥행작을 만들 힘도 없다. 좌우 모두 지나친 진영 논리에 휘둘려 관객들이 왜 ‘연평해전’에 주목하고 있는지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연평해전’의 예상 외 선전은 ‘실미도’처럼 알려지지 않았던 실화의 힘일 수 있다.
영화 ‘변호인’의 투자배급사 NEW(뉴)는 일부 극우 세력에 의해 ‘종북 영화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김우택 뉴 총괄대표는 “시나리오가 재미있어서 투자했는데…”라며 억울함을 토로하곤 한다. ‘연평해전’의 투자배급사도 뉴다. 공교롭게도 뉴는 ‘좌빨 영화’와 ‘극우 영화’로 잭팟을 터트리게 됐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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