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 달라" 연락 받고 달려가 구조
“할 일을 했을 뿐인 걸요.”
운전 중 창문으로 들어온 말벌에 쏘여 사고를 내고 정신을 잃은 정모(60)씨를 구한 윤진영(47)씨는 의외로 차분했다. 윤씨는 지난달 30일 에어컨 설치를 위해 정씨 집에 들렀다가 그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 됐다. “119구급대원 지시만 따랐다”며 부끄러워하는 윤씨의 ‘고객감동’ 스토리는 이랬다.
지난달 30일 오전11시 경기 양평군 소재 롯데하이마트 에어컨 설치팀장인 윤씨는 동료 이현섭(44)씨와 서종면에 있는 정씨의 전원주택에 도착했다. 팔순 노모로부터 아들 정씨가 곧 도착한다는 얘기를 듣고 기다리던 윤씨 일행에게 다름아닌 그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그때였다.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목소리에 힘이 없었어요. 자세히 들어보니 ‘벌에 쏘여 숨 쉬기 힘들다, 살려달라’는 얘기였지요.“ 그가 정신을 잃어가며 통화버튼을 눌렀는데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윤씨였다.
정씨를 찾아 나선 윤씨 일행은 300m 떨어진 산길 모퉁이에서 사고가 난 채 서 있는 승용차를 발견했다. 차 안에 정씨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윤씨 일행은 119 신고 후 구급대원 지시대로 응급처치에 들어갔다. 연신 얼굴을 찬물로 닦아내자 잠시 흐릿하게 의식을 되찾은 정씨에게 이번에는 정신을 놓지 않도록 대화를 계속 시도했다. 10분 뒤에 온 구급대가 30분을 달려 도착한 병원에선 “교통사고 2차 피해까지 당해 혈압이 많이 떨어져 있고, 의식도 없다”며 긴급치료에 들어갔다. 말벌의 독은 생명까지 위협할 만큼 강했다. 윤씨 일행은 팔순 노모가 놀랄까 봐 사고소식을 전하지 않고 대신 병원으로 가 보호자 역할을 했다.
4시간 만에 의식을 회복한 정씨는 뒤늦게 윤씨 일행 이야기를 접하고, 1일 부인을 통해 감사를 표했다. 국민안전처는 더위로 말벌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산행 때는 벌을 유인하는 향수 등을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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