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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 대신 글 쓰기 택해… 24년 만에 소설 끝마쳐 홀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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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 대신 글 쓰기 택해… 24년 만에 소설 끝마쳐 홀가분"

입력
2015.07.0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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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못 쓰면 살아도 사는게 아냐

1년에 3권 써 마음 속 큰 빚 갚아

표절 논란 신경숙 게을렀다고 생각

작품 속 화학적 결합 제대로 안 돼

작가 복거일씨가 24년간 묵혀 뒀던 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의 집필을 마무리했다. 암 판정을 받고 가장 먼저 생각난 일이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작가 복거일씨가 24년간 묵혀 뒀던 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의 집필을 마무리했다. 암 판정을 받고 가장 먼저 생각난 일이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간암이란 얘길 듣고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탔는데 제일 먼저 ‘역사 속의 나그네’는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 속 무거운 빚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야말로 끝을 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작가 복거일(69)씨의 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 전 6권이 완간됐다. 1988년 ‘중앙경제신문’에 연재를 시작해 1991년 세 권이 출간됐으나 마무리되지 못한 채 24년이 흘렀다. 기다리다 지친 독자들 중엔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사기꾼 아니냐”며 화를 낸 이도 있었다. 작가가 다시 집필에 착수한 건 3년여 전 간암 판정을 받은 후다.

“병원에 안 가고 책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항암치료를 받으면 글 쓸 시간도, 체력도 없어질 텐데 어차피 글 못 쓰면 작가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잖아요. 죽을 때가 되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던가요? (펜이) 잘 나가더라고요. 세 권 쓰는 데 1년도 채 안 걸렸습니다.(웃음)”

‘역사 속의 나그네’는 2070년대 인물 이언오가 16세기 조선으로 날아가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미래소설이자 과학소설, 지식소설이다. 이 독특한 주제는 복씨가 치렀던 외로운 투쟁과 연관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이 창궐했던 80년대 후반, 예술의 사회참여를 부르짖는 좌파 이론가들 사이에서 복씨는 “왜 문학이 사회주의 운동에 복무해야 하는가”를 묻는 거의 유일한 자유주의 옹호론자였다.

“그땐 자유주의란 말이 더러운 말이었습니다. 지식인은 먹물이라는 경멸 어린 별칭으로 불렸죠. 그런 상황에서 현대 지식이 중세 사회로 퍼져 사회가 바뀌는 모습을 그리는 일은 작지 않은 뜻을 지닌다고 판단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21세기의 드문 독서광으로서, 16세기 조선으로 날아가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어려운 사람을 살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근육질의 영웅이 아닌 지식의 영웅인 셈이다.

세기가 바뀌고 문학이 문화의 중심에서 내려온 지금, 당시의 논쟁 상대는 사라졌다. 대신 문학의 상업주의와 종이책 쇠퇴 등 또 다른 복병이 등장했다. “과거에 문학이 지식에 대한 모든 기대를 떠안았다면 지금은 문학을 여흥으로 여기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과도기를 지나는 게 쉽지 않죠. 이 책이 그 변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복씨는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작품은 공적인 지적 재산을 작가가 화학적으로 결합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다만 화학적 결합이 제대로 안 됐을 때 베꼈다는 말이 나오는데, 신씨는 이 부분에서 게을렀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표절과 함께 불거져 나온 문단권력 논란에 대해선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세상 만사를 권력의 문제로 보려는 건 문인들의 약점”이라며 “가상의 거대 권력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면 80년대랑 달라진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역사 속의 나그네’ 완간으로 큰 빚을 갚았다는 작가는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집을 준비 중이다. “한 권은 생전에, 한 권은 죽은 뒤에 내겠다”고 농담조로 말하는 작가에게선, 회복 이후 삶에 대한 생각이 좀처럼 엿보이지 않았다. 복씨는 간암 판정을 받은 이후 일체의 항암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상태가 좋지는 않아요. 점점 나빠지고 있죠. 나이가 있는데 호전되길 바라겠습니까. 굳이 건드리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갈 생각입니다. 다만 이제 소설은 못 쓰겠죠. 나는 장편만 쓰는 사람이니까요. 이전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어떤 유명한 작가가 글을 다 못 마치고 죽을까 봐 시작을 못한다고 한 적이 있어요. 나 같은 사람도 그런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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