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채권단 협상안 대립 가열
"그리스는 곧 유럽… 받아들여야"
아테네서 2만여명 모여 목청
빈부차 따라 갈리는 모양새
국제통화기금(IMF) 채무상환 시한을 넘긴 그리스 국민들이 국제 채권단 협상안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둘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스의 침울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폭우와 번개가 쏟아진 30일 수도 아테네에서는 시민 3만여명이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은 채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5일 예정된 국민투표를 통해 채권단의 제안을 받아들이자는 ‘네’(NAIㆍ예)집회와 거부하자는 ‘오히’(OXIㆍ아니오) 집회를 각각 열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의 의회 건물 앞에 모인 찬성 집회에는 2만여명이 참가해 그리스 국기와 유럽연합(EU) 깃발을 동시에 흔들며 일대를 가득 메웠다. 이들은 ‘그리스는 곧 유럽’이라는 팻말을 들고, 채권단의 제안을 거부하는 자국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를 향해 “퇴진하라”는 구호를 반복해 외쳤다.
찬성 집회에 나선 변호사 앙겔라 칼라이메라는 텔레그래프를 통해 “모든 그리스인들이 채권단을 비난 받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정권이 현 상황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융업자인 사바스 파나고풀로스는 “우리는 드라크마(그리스 옛 화폐) 시대와 유로화 시대를 모두 살아봤다”며 “문제는 유로화가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재정 운용”이라고 강조했다.
한때 찬성 집회 현장에서는 이에 합류하려던 반정부 시위대 200여명과 진압에 나선 경찰이 충돌하며 소동이 일기도 했다.
반면 신타그마 광장 반대편과 북부 테살로니키 주요 거리에서는 시민 1만7,000여명이 반대 집회를 열어 맞불을 놨다. 이들은 ‘채권단은 우리 삶을 결정할 수 없다’ ‘협상안을 반대하자’는 팻말을 위아래로 연신 흔들었다.
반대 집회에 참가한 화가 안도니아 클로기루는 AP에 “위기가 시작된 이후 우리는 ‘네’라는 대답만 해왔다”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이제 ‘아니오’로 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현지 교사 피날로프 시노디누는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우리는 존엄성을 되찾을 수 있다”며 “우리는 강제에 의해서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의견을 내 사안을 결정하고 싶다”고 밝혔다. 주부 룰라 바크리나도 “내 아이들에게 절망적인 현실을 물려줄 순 없기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며 울먹였다.
특히 반대 집회에는 긴축정책을 주도한 최대 채권국 독일을 겨냥하듯 독일어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다수 내걸렸다. 독일어로 ‘아니오’를 뜻하는 ‘나인’(NEIN) 단어가 유독 눈에 띄었고 거칠게 독일에 항의하는 외침도 곳곳에서 들려왔다고 AP는 전했다.
이처럼 그리스 국민들이 둘로 나뉜 배경으로는 5년간 혹독한 긴축에 시달리며 심화된 계층화가 꼽힌다. 긴축 요구를 수용할 여유가 있는 부유층이 찬성 측으로, 궁핍 생활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이들이 반대 측으로 몰렸다는 것이다. 실제 찬성 집회에 모인 이들은 변호사나 금융업자, 회계사 등 대부분 전문직 종사자인 반면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화가나 음악가, 주부 등이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5일 치러질 국민투표에서 그리스인들이 국제 채권단이 내놓은 구제금융 협상안에 찬성표를 더 많이 던지면 그리스는 채권단과 다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반면 그리스 국민이 협상안에 반대하면 최악의 경우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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