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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아닌 밤중에 선생님

입력
2015.07.0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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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선생님 소리를 듣는 일이 잦아졌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탓이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짜증나는데 선생님으로 불리기까지 해야 한다니, 그야말로 이중고다. 비디오 가게와 도서 대여점과 편의점과 치킨 배달과 웨딩홀 뷔페 서빙 등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던 대학생 시절에도 학원 강사는 하지 않던 나다. 몸은 고되고 시급은 적었지만 적어도 선생님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딱 한 번 선생이라고 불린 적이 있긴 하다. 복학하고 학내 취업센터에서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이었다.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편지를 대필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전화였다. 이왕이면 소설에 관심이 많은 국문과 복학생이면 좋겠다고 했다. 일단 찾아보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나는 30분쯤 후에 그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취업센터에서 연락 받은 국문과 복학생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날 저녁, 나는 전화를 건 남자를 만났지만 편지를 대필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혼 공소장을 대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혼 공소장에 대한 반박문을 대필했다고 해야겠지만. 그의 집 거실에 앉아 그의 아내 측이 제출했다는 공소장을 읽고 공소장에 적시된 가정폭력에 대한 그의 장황한 변명을 들으며 요령부득한 반박문을 썼다. 그는 내게 최대한 눈물을 짜낼 수 있게 마치 소설처럼 써달라고 요구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나를 꼬박꼬박 금 선생, 금 선생 하고 부르던 그는 대필의 대가로 10만원을 지불했다. 원래 5만원을 주기로 했지만 글이 마음에 들어 특별히 더 주는 거라는 생색도 잊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일종의 예시였던 것도 같다. 그 후로 나는 뜻하지 않게 글을 팔아 돈을 벌게 되었고 그때마다 선생님 소리를 듣게 되었으니까. 손사래를 쳐보기도 하고 그냥 ‘금정연씨’정도로 불러달라고 부탁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엇비슷했다. 다른 호칭은 어색하기도 하거니와 출판사 내부의 분위기도 있어서 혼자만 그렇게 부를 수는 없다는 대답이었다. 말하자면 그건 일종의 주례사 호칭이다. 그저 그런 작품들에도 으레 수작이다 걸작이다 그것도 아니면 인상적인 작품이다 하는 호평이 달리는 것처럼, (나처럼)그저 그런 인간들에게도 관습적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것이다.

그건 언어의 인플레이션이다. 언젠가 조지 오웰이 말한 것처럼 “‘리어왕’은 좋은 희곡이고 ‘4인의 의인’(에드가 월러스의 탐정소설)은 좋은 스릴러라고 말한다면 ‘좋다’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시 말해, 이승훈 시인도 선생님이고 금정연 서평가도 선생님이라면 선생님이라는 말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출판계에 이런 관습이 만연하게 된 이유가 뭘까?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그 또한 언어의 인플레이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어, 구체적으로는 글의 가치가 낮아져 환금성이 떨어진 탓이다. 돈이 없는 출판사는 돈 대신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듬뿍 주고, 돈이 없는 작가는 그것으로 잔고 대신 자존감을 채우는 것이다. 망해가는 업계다. 차라리 한 방에 망해버리기라도 하면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악사들처럼 “오늘밤 자네들과 함께 연주하게 되어 영광이었네”라며 멋이라도 부리련만, 그것도 아니니 서로 걸작이네 선생님이네 치켜세우며 우스꽝스러운 역할극을 하고 있는 셈이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공소장 반박문을 대필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이후로 내게는 고료를 받는 글을 과장해서 쓰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다고 원고료를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어쨌거나, 이 글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난 것처럼, 나는 선생님이라고 불릴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마시라. 그러면 나도 당신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그리고 원고료는 적어도 좋으니 제때만 주시길. 부탁합니다.

금정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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