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국내 극장가는 할리우드 영화의 놀이터였다.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의 대공습이 있었고,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등 다크호스의 흥행 반란도 있었다. 반면 한국영화는 지지부진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한때 관객 감소세를 보였으나 상반기 전체 관객 수는 지난해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외화가 득세한 올 상반기 극장가를 숫자에 기대 정리했다.
▦1,046만9,263명
개봉하기도 전부터 떠들썩했다. 2012년 개봉한 1편의 후광효과가 만만치 않았다. ‘아이언맨’시리즈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등 마블코믹스 원작영화들이 지핀 불씨도 강했다. 무엇보다 지난해 봄 서울 일대에서 촬영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지난 4월 ‘어벤져스2’의 개봉을 앞두고 한국영화들은 몸 사리기에 나섰다. 국내 영화사들은 ‘어벤져스2’의 정확한 개봉일을 알기 위해 정보력을 가동했고 자신들의 영화들을 언제 선보여야 좋을지 고심했다.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과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가 맞대결을 펼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테랑’이 여름시장으로 옮겨가게 됐다. ‘당천 영화’(당연히 1,000만 관객이 볼 영화)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4월23일 개봉한 ‘어벤져스2’는 무주공산 같은 국내 극장가를 맹폭했다. 초반 흥행 기세를 올리며 ‘아바타’가 지닌 외화 최고 기록을 깰 듯이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최종 성적은 기대보다 낮았다. ‘어벤져스2’의 최종 관객 수는 1,046만9,263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다. 누구나 부러워할 흥행 성과이나 수입배급사 내부에선 실망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1,000만 영화가 탄생했으나 ‘어벤져스2’를 수입하고 배급한 월트 디즈니 코리아에선 성과급 잔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본사의 기대치가 워낙 커 1,000만 관객으로도 만족을 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기본 1,000만을 할 영화라는 예상들이 나왔는데 1,000만 언저리에서 흥행 행진이 멈췄으니 실망도 꽤 컸을 만도 하다.
▦5,000만원
‘어벤져스2’가 주류 상업영화 시장을 뒤흔들었다면 다양성영화시장에선 ‘위플래쉬’가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위플래쉬’는 한 음악학교를 배경으로 악랄하게 학생들을 다그치는 교수와 그에 맞서는 한 학생의 광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교수역의 J. K. 시몬스가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대중들의 눈길을 끌었으나 오스카의 후광보다는 영화의 순수한 힘으로 흥행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의 치열한 교육열이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왔다.
영화 흥행보다 더 화제가 됐던 건 국내 수입 가격이었다. 수입사 에이든 컴퍼니는 단돈 5,000만원으로 ‘위플래쉬’의 상영 판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충무로의 부러움을 샀다. 영화의 누적 관객수는 158만6,365명이었고 매출액은 126억원을 넘었다. 지분 계약에 따라 미국 영화사와 수익을 나눴다 해도 로또 부럽지 않은 흥행 성과를 남긴 셈이다. ‘위플래쉬’의 깜짝 성공은 국내 수입사들의 다양성영화 수입 경쟁으로 이어졌고 외화 수입가를 높이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400만명
연초부터 한국영화는 부진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국제시장’이 선전했으나 올해 개봉한 영화들은 한 편도 400만 고지를 밟지 못했다. 한효주 정우 김윤석 김희애 주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쎄시봉’과 하정우가 연출과 주연을 겸한 기대작 ‘허삼관’이 흥행에서 별 재미를 얻지 못했다. 상반기 개봉작 중 관객을 가장 많이 모은 영화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로 387만2,053명이었다. 그나마 전작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흥행에 기댄 성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충무로 기대작들이 흥행전선에서 패퇴하면서 한국영화 위기론까지 제기됐다. 300만 관객 동원이 높다란 고지처럼 보인다라는 넋두리가 떠돌던 2008년쯤의 충무로를 떠올리게 한다는 말까지 돌았다. 3월 개봉한 ‘스물’이 한국영화의 흥행 부활을 알릴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으나 300만명을 겨우 넘어섰다. ‘강남1970’과 ‘악의 연대기’도 200만 언저리에서 흥행을 멈추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500만 관객을 모았던 민규동 감독의 ‘간신’과 신하균 장혁 주연의 ‘순수의 시대’는 참담한 흥행 결과를 내 사극 전성시대가 막을 내린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낳았다.
▦75
상반기 열성적인 영화팬들을 매료시킨 영화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였다. 가까운 미래 석유와 물을 두고 국가들끼리 다투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절멸의 위기에 처한 상황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였다. 1985년 ‘매드맥스3’가 선보인 뒤 30년 만에 만들어진 시리즈 4편이라 개봉 전부터 영화팬들의 호기심을 불렀다. 막상 영화가 극장가를 찾은 뒤에는 샬리즈 시어론의 연기 변신에 초점이 맞춰졌다. 질주하는 차량에 매달려 전기기타를 연주하는 일명 ‘빨간 내복’ 사나이에 대한 궁금증도 폭발했다. 영화의 빼어난 완성도에 대한 대중들의 애정 어린 반응이었다.
조지 밀러 감독에 시선이 모아지기도 했다. 75세의 나이에 젊은 사람 못지않은 감수성으로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리듬감 넘치는 장편영화를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무엇보다 밀러 감독의 ‘반전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외과의사였던 밀러 감독은 ‘매드맥스’로 장편영화 데뷔식을 치른 뒤 할리우드로 진출해 다종다양한 활동을 선보였다. 돼지가 주인공인 가족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의 각본을 쓴 뒤 제작을 하기도 했고, ‘꼬마 돼지 베이브 2’를 연출하기도 했다. 첫 연출한 장편 애니메이션 ‘해피피트’로 아카데미영화상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이력도 ‘매드맥스’의 창시자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누적 관객수는 382만7,494명이다.
▦2
두 편의 할리우드 스파이 영화가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킹스맨’)가 첫 번째 주인공이었다. 중세기사단을 연상시키는 비밀요원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 유머를 곁들여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대사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흥행했다. 배우 콜린 퍼스가 강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며 수트를 입고 액션을 펼치는 장면에 환호하는 여성관객들이 특히 많았다. 최종 관객 수는 612만9,727명. 잘해야 200만 관객을 모을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간 흥행 성적이었다.
‘스파이’도 흥행 반란을 일으켰다. 잘생긴 외모의 날렵한 남성이 스크린 중심에 서곤 했던 스파이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뒤집고 뚱뚱한 몸매의 내근직 여성 요원을 현장에 투입하며 웃음을 제조해냈다. 231만706명이 관람했다. ‘킹스맨’과 ‘스파이’는 장르적 규칙을 거부하고 스파이 영화의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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