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동성애로 나라가 무너진다고?

입력
2015.06.30 17:19
0 0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5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성소수자와 동성애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5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성소수자와 동성애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성소수자 퀴어문화축제 마지막 날 행사가 열리던 지난 28일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나 퇴근했다. 버스로 지나가며 본 광장과 덕수궁 앞 일대는 축제 참가자와 이 행사에 반대하는 시위대, 이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 배치된 경찰로 일대 수라장이었다.

귀가해서 마침 이웃들끼리 모인 자리에 갑자기 끼게 되었다. 시청 앞 광장 퀴어문화축제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 날 처음 인사한 한 이웃 부부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다 온 그 부부에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다. 거기서 살 때 아래층에 프랑스인 가족이 있었다. 그 아랫집은 어린 딸이 둘이어서 집에 알록달록 예쁜 원피스가 즐비했다고 한다. 이를 본 그 집 아들이 원피스가 예쁘다고 사달라고 하고, 사줬더니 그걸 입고 밖에도 나가더란다.

부부는 내심 걱정이 됐다. 혹시 우리 아들의 성 정체성이?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한 거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다른 지역보다 앞서 성소수자 차별금지 법규를 잇따라 통과시켜 ‘세계 게이들의 수도’라고 불리는 곳이니 환경 탓일까 생각했을 법도 하다. 그리고 어느 날 아들이 원하는 대로 원피스를 입고 가족이 외식을 하러 갔단다. 마침 그곳에서 아는 선생님을 만났다. 넌지시 아들을 가리키며 고민의 해법을 구했다. “괜찮을까요? 선생님.” 그랬더니 그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하더란다. “아이가 행복하다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퀴어문화축제로 서울 한복판에서 소동이 벌어지기 이틀 전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합법 판결을 내렸다. 이미 인구에 회자된 그 판결의 마지막 대목을 다시 인용해보면 이렇다. ‘(상고한)이들이 결혼이란 제도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들이 소송을 낸 것은 그들 스스로 결혼의 성취감을 알고 싶을 정도로 깊이 결혼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망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에서 배제돼 고독하게 남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을 요구했다. 연방헌법은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부여한다.’

미국은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한 21번째 나라다. 10여년 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이미 서유럽과 북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이를 법으로 허용했고 북미에서 캐나다 멕시코가, 남미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가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성소수자들의 행복 추구를 당연한 법적 권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퀴어문화축제 반대에 나선 이들은 동성애를 하나님의 섭리를 위배하는 것이라거나, 가정을 파괴한다거나, 에이즈를 확산시킨다고 비난한다. 일일이 논박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종교적인 신념으로 성소수자를 ‘마귀’ 취급하는 사람들은 동성결혼을 법으로 인정한 나라들에도 어느 정도는 있으니 뭐 그러려니 넘어가도 될 듯 하다.

한가지 마음에 걸렸던 건 큰북이 동원되고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흘렀던(그런데 왜 동성애자로 알려진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인형 발레공연을 했는지 다들 궁금해한다) 그 반대 집회 현장에 한복 부대가 등장하고 태극기가 휘날렸다는 점이다. 아, 이건 그냥 종교적인 시위가 아니구나, 다 함께 나라를 지키자는 거구나, 애국하자는 거구나. ‘피땀 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로 무너진다’는 구호가 이런 정서를 대변한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정서를 갖고,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애국’이라는 미명 아래 ‘집단’으로 억압하려 드는 문화가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동성결혼을 허용한 나라가 몰려 있는 서유럽과 북유럽은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다.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한 행복 추구를 무엇보다 우선해 생각하는 나라들이다. 타인의 행복 추구에 대한 관심은 고사하고 그걸 ‘집단’으로 억압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이 땅에선 누구도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치조차 패거리 짓이나 하고 있으니.

김범수 여론독자부장 bs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