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정부가 오는 5일(현지시간) 열리는 국민 투표에 사용할 투표 용지를 공개했다. 그런데 투표자들이 도장을 찍어야 할 자리에 상식과는 달리 ‘아니오’가 위에 ‘예’가 아래에 인쇄돼 있어 “그리스 정부가 반대표를 유도하기 위해 ‘찬ㆍ반 투표’가 아닌, ‘반ㆍ찬 투표’를 하려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에서는 “처음 보는 투표 용지” “정부가 반대표를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최근 많은 언론과의 인터뷰 및 연설을 통해 “채권단개혁안에 대해 반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협상에서 그리스의 입지도 강해질 것”이라며 “채권단의 제안을 거부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국민 투표를 통해 ‘반대’ 의견을 냄으로써 차후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그리스는 한층 강화된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장 글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은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반대를 선택하는 것은 그리스가 EU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찬성표를 호소하고 있다.
투표용지 질문에 ‘유로존’이란 말이 언급돼 있지 않은 점도 논란이다. 투표용지 왼편에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25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회의에서 제안한 협상안을 수용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이 인쇄돼 있다. 치프라스 총리는 “채권단이 요구하는 최종 개혁안에 대해 찬반을 묻는 투표”라는 입장이지만, EU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할 지 여부를 묻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며 국민투표 질문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국민투표 준비도 불안한 상황이다. 그리스 헌법에는 대국민투표 시 5일 전까지 투표용지가 인쇄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1,600만장의 투표용지와 이를 담을 봉투가 필요한 데 이를 30일(현지시간)까지 인쇄해야 한다. 또 이 투표용지를 지방 정부에 전달하고 각 가정에 우편 배송해야 한다. 시간 부족으로 오지 섬이나 산악지대 마을까지 전달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한편 정부가 국민투표에서 특정 결과를 유도하려 했던 대표적인 경우로 1978년 칠레 투표가 꼽힌다. 당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정권은 투표용지에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가’라고 질문한 뒤, ‘찬성’ 칸에는 칠레 국기를, ‘반대’ 칸에는 검은색을 표기함으로써 압도적인 찬성을 얻은 적이 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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