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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칼럼] 표절보다 깊은 병

입력
2015.06.3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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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우국’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17일 오후 서울시내 한 서점에 신 작가의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신경숙 작가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우국’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17일 오후 서울시내 한 서점에 신 작가의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최근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가 한국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표절 의혹에 대하여 극도의 분노와 배반감을 표출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는 다양한 코멘트들로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표절에 대한 집단적 분노가 표출되고, 그녀의 작가로서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전적 부정’의 수준까지 치닫는 조롱과 비방의 댓글들이 곳곳에 퍼지고 있다. ‘합리적 비판’과 ‘폭력적 비방’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이다.

이 집단적 분노 현상을 보면서 한국사회가 오랫동안 지니고 있는 뿌리 깊은 병에 대하여, 그리고 표절 문제가 문단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들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대학들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이슈중의 하나는 ‘표절’이다. 교수들의 다양한 평가과정에서 이 표절에 대한 의혹제기는 단골 이슈중의 하나이다. 학생들의 논문 심사를 할 때 많은 부분에서 노골적인 표절이 분명한 경우에도, 이들의 석사ㆍ박사 논문들은 종종 ‘너그럽게’ 통과되곤 한다. 고질적 ‘표절 성향’이 어찌보면 우리 사회의 DNA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표절’의 영어인 ‘플레이저리즘(plagiarism)’의 문자적 어원은 ‘유괴’이다.

그런데 ‘지적 도둑질’ 이라고 간주되는 표절에 대한 한국사회의 ‘표절 불감증’은 어디에서 기인하며, 왜 표절 시비가 문단, 학술, 종교, 디자인, 대중 문화계 등 곳곳에 이토록 산재해 있는 것일까. 물론 ‘표절’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모든 분야에서 크고 작은 표절사건이 지속적으로 표출되는 사회는 참으로 드물다. 나는 그 주요 원인중의 하나를 ‘독창적 사유를 억누르는 병’ 때문이라고 본다.

글쓰기와 같은 창의적 작업에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 중의 하나는 ‘독창적 사유’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개개인들의 ‘독창적인 사유하기’를 억누른다. 입시와 암기위주의 공교육, 고정된 ‘정답 찾기’를 강요하는 교육방식, 그리고 군사주의적이고 유교적인 위계주의 문화 속에서 자라온 우리는 하향적 성향의 ‘집단적 사유’에 익숙하다. 그 ‘집단’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독창적 사유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없는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표절 공화국’이 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근원적인 문제는, 독창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억누르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정답’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그 ‘정답’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곧 ‘틀린 것’ 또는 ‘위험한 것’으로 규정되는 사회 속에서, 표절을 통하지 않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가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기 시작하던 첫 학기에 논문에서 표절을 집어내는 소프트웨어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받기 위해 3일 동안 진행되던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다. 새로 임용된 교수들에게 대학이 권장하는 교육 프로그램 리스트에 이 워크숍이 포함되어 있어서, 테크놀로지에 별로 관심 없던 내가 3일이라는 긴 시간을 할애하였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가르칠 때 나는 이러한 소프트웨어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 소프트웨어에 파일을 넣으면 특정한 인터넷 자료, 논문, 책 등과 유사 구절들이 어떻게 얼마만큼 겹치는지를 분석하여 비율과 함께 상세하게 보여준다. 교수는 15% 또는 20%든 어느 정도까지 학생들이 제출한 페이퍼가 다른 자료들과 겹치는 것을 허용할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글들에서 겹치는 글들의 지수를 0%로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표절의 다양한 양태들에 대한 것 그리고 표절이 심각한 ‘지적 범죄’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상식화’되어 있으며, 교수들의 강의요목은 물론 대학의 정책에서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이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나는 한국에서 보아왔던 대학사회의 학생이나 교수들의 표절문제에 대하여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표절 불감증’이라는 심각한 병을 넘어서는 것은 사실상 표면적인 법적 제재만을 통해서 가능하지 않다. 표절이 사라지기 위하여 선행되어야 하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표절 자체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무수한 개별인들이 ‘집단적 사유’나 ‘정답을 찾는 사유’가 아니라, 각각의 내면세계 속에서 창의성, 고유성을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과 다르게 독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문제아’로 간주된다. 가정, 학교, 회사 등에서도 ‘위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무조건 ‘예’하는 것이 미덕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이렇게 표절이 사회 곳곳에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개개인들이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자유롭게 사적 또는 공적 공간에서 표현하는 것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긴급한 과제이다. 개인들이 지닌 창의적 사유를 존중하는 사회는, 이렇게 ‘표절 불감증’으로 지식생산의 중심공간인 대학이나 문단세계를 총체적으로 가치하락 시키지 않는다. 또한 ‘표절 공화국’의 비애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표절 규정의 엄격성과 표절 결과에 대한 엄중한 책임성의 요구가 특별한 일이 아닌 ‘상식적인 일’로 간주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표절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첫째, ‘예’만이 아니라 ‘아니오’도 존중하는 사회, 둘째, ‘정답 찾기’가 아니라 새로운 ‘물음 찾기’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사회, 그리고 셋째, ‘집단적 사유’만이 아니라 ‘개별적 사유’들의 소중함을 아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점차적으로라도 나타날 때 표절은 극소화되고, 독창적 사유의 꽃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피어나게 될 것이다. ‘표절 사회’의 근원적인 원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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