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체조, 올림픽 등 큰 경기 빼곤 대부분 대회에 협회 측 지원 전무
숙식비·심판 경비까지 선수가 부담
체조선수들 협회 채점 방식에 반발, 광주 U대회 단체전 출전 끝내 무산

지난해 해외에서 열린 한 리듬체조 월드컵 경기에 참가했던 국가대표 A선수의 어머니는 딸의 출전 소식을 듣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심판 대동제를 채택하고 있는 체조는 일부 대회를 제외하고는 참가국 심판이 선수와 함께 가야 한다. 하지만 당시 참가한 대회는 대한체조협회 측 지원이 전무해 선수가 자신 몫은 물론이고 대동한 심판과 국가대표 코치의 비행기표, 숙식비까지 총 700여만원을 지출해야만 했다. A선수의 어머니는 “명색이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나가는데 심판 경비까지 선수가 부담해야 하나 싶었다”며 “이제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경비를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리듬체조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선발돼도 각종 경비를 부담해야 하는 비합리적인 관행에 등골이 휘고 있다. 리듬체조는 국제대회 경험이 곧 선수의 경쟁력을 좌우하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등 굵직한 대회를 제외하면 협회 지원이 전무해 선수들은 애가 타는 형국이다.
국제체조연맹(FIG)에 따르면 리듬체조 국제대회는 올림픽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일부 대회를 제외하면 대부분 출전 국가가 자국의 심판을 대동하게 되어 있다. 다만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종합 스포츠대회의 경우 체조협회의 상위 기관인 대한체육회가 심판 경비를 비롯해 선수들의 경비를 부담하고 체조협회는 세계선수권 등 굵직한 일부 대회의 경비를 지원한다.
문제는 이를 제외한 월드컵대회, 그랑프리, 국제토너먼트 등 대다수 국제대회는 협회 측 지원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국내 리듬체조 에이스 손연재 선수도 3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제대회 출전에 연간 수천만원이 소요돼 체조를 포기할 뻔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체조협회 관계자는 “협회가 계획한 대회는 협회가 부담하지만 그 외 대회는 참가를 희망하는 선수가 관련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예산이 부족해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의 경우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수들이 참가한 국제대회는 총 16개지만 이 중 협회 측이 지원한 대회는 4개에 불과했다.
리듬체조 국가대표에게 필수적인 경기복 구매에도 협회 측 지원은 전무하다. 경기장을 수 놓는 경기복 한 벌 당 가격은 150만~300만원에서 비싸면 수천만원에 이른다. 통상 한 선수가 연간 3벌 정도의 경기복을 구입하는데 이 역시 선수들 자비로 마련해야 한다. 선수들은 “고액의 경기복까지 협회가 부담해달라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협회 측이 경기복 예산을 책정했음에도 이를 집행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2014년 체조협회 사업계획을 살펴보면 2011년부터 매년 선수 한 명당 30만원의 경기복 예산이 책정돼 있지만 실제 집행되지는 않았다. 협회 관계자는 “후원사 측이 경기복 제작 노하우가 부족해 물품으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며“경기복 지원은 매년 제기되는 문제라 앞으로 수정할 생각”이라고 해명했다.
국제대회에서 선보일 작품을 선정하고 배우는 데 드는 비용도 선수들 몫이다. 통상 국내보다 기량이 뛰어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출신 코치를 데려와 동작과 음악을 선정하는데 한 작품당 개인전의 경우 500유로(60여만원), 단체전의 경우 1,000유로(120여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 대회당 개인전은 4개, 단체전은 2개의 작품이 필요해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액수다. 2년 전 두 개의 국제대회에 참가했던 B선수의 어머니는 “단체전의 경우 작품비를 선수 머릿수로 나눠 부모님들이 분담했다”며 “국가대표로 시합에 참여하면서 이런 소소한 부분까지 지출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불합리한 처우에 문제를 제기하며 세종대 측은 지난 4월 체조협회를 스포츠 4대악센터에 신고했고 현재 대한체육회로 이첩돼 조사 중이다. 한 체조 관계자는 “나라를 대표해서 시합에 나가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런 비용까지 책임지는 것은 부당하다”며 “협회가 최소한 선수들이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체조협회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규정에 없는 채점방식을 적용한 데 반발한 일부 선수들의 보이콧으로 단체전 팀을 구성하지 못해 논란(본보 5월 14일자 11면)을 빚었다. 이로 인해 한국 선수들은 3일 열리는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단체전 출전이 무산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