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학, 55년 수집한 골동품 전시
"골동품 모으는 화가가 좋은 화가, 김환기·피카소도 수집가로 유명"
사람들은 화가 김종학(78)을 ‘꽃의 화가’라 부른다. 하지만 서울 남현동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종학의 개인전에는 그의 화려한 꽃 그림이 거의 없다. 대신 전시장을 가득 메운 것은 짙은 단색과 기묘한 조형미를 뽐내는 목가구다. 55년 간 수집한 목가구와 자수, 보자기, 농기구 등 골동품은 김종학에게 새로운 창작의 출발점, 창작의 열쇠였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종학은 골동품 하나 하나를 마치 자신이 직접 깎은 조각인 양 설명했다. 나무로 만든 거대한 촛대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인물상이나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추상조각을 연상시킨다”고 했고, 여러 색 천을 이어붙인 보자기는 “네덜란드 화가 피트 몬드리안의 여러 색으로 구성된 추상화를 닮았다”고 설명했다.
김종학은 특히 “사랑방 선비가 쓰던 물건은 내가 제일 먼저 산다”는 생각으로 장롱, 사방탁자(책장), 문갑(종이서랍), 필통과 지통 등 사랑방 가구를 많이 모았다. 그가 가구를 선택하는 기준은 서로 다른 모양의 나뭇결이 만나 조화를 이루며 드러내는 조형미다. 그는 목판을 어루만지며 “옛 목수들의 비례감이 좋다”“개성이 강하다”는 등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종학은 골동품상 사이에서 목가구 수집가로 유명했다. 인사동이나 장안평의 골동품상을 하루에 2시간씩 돌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았다. 한국의 박물관에 목가구 전용 전시장이 없다는 것을 알고 1989년 국립중앙박물관에 목가구 280여점을 기증했다. “박물관서 특별 전시회를 열면서 이제는 정말 수집을 끝낸다, 생각했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간다고 결국 또 조금씩 사게 됐어요. 돈이 없을 때는 돈 대신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습니다.” 현재 설악산과 고양시 일산에 그의 수장고가 있다.
김종학은 원래 도자기와 민화 등을 모으고 싶었으나 돈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목가구에 눈을 돌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나무 물건을 가려내는 솜씨를 길렀다. 그는 “나무 물건을 1,000냥 주고 산다면 100냥이 나무 값이고 900냥은 눈값(물건을 보는 안목)이라더라”며 “골동품을 모으는 화가가 좋은 화가”라 했다. “한국에는 이중섭, 도상봉, 김환기가 골동 수집가로 유명했어요. 서양에서도 피카소나 모딜리아니가 아프리카 조각을 모았다고 합니다. 피카소의 입체회화 원형은 아프리카 조각에 있죠.” 옛 아름다움을 잘 아는 이들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종학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꽃 그림 외에 사계절 자연 그림, 인물화나 동물화 같은 다양한 작품을 봐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객원큐레이터를 맡은 딸 김현주 큐레이터는 “아버지가 ‘꽃의 화가’라는 이름에 갇혀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번 전시는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는 전시로 봐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8월 16일까지. (02)598-6247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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