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명이 5만원씩 빌려 2주간 장사
서대경 식객촌 대표가 족집게 상담
"투자 얻으려면 사업 메리트 갖춰라"
작년에만 400명이 교육 과정 참여
예비 여성 CEO들 창업 열기 후끈
지난 26일 오후 서울 청진동 종각역 부근 GS그랑서울의 커피숍에 서울여대와 덕성여대 학생 15명이 사업 실적 보고서와 돈을 들고 한 남성을 만나기 위해 모였다. 이날 이 곳에 온 여학생들은 2주 전 팀을 꾸려 한 남성에게서 빌린 5만원으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한 후 실제로 벌어들인 돈을 갖고 왔다.
길거리 옷 판매를 시도했다가 종자돈을 일부 까먹은 학생들도 있고 사회관계형서비스(SNS)를 활용한 ‘기프티콘’ 판매로 100배 수익을 낸 학생들도 있다. 이들을 만난 남성은 학생들의 사업실적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인들이 인정상 도와주는 것은 한 두 번이다. 무턱대고 좋다고만 설득하면 무조건 망한다.”
여대생들이 만난 남성은 지난해 ‘식객촌’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뜨린 서대경(45) 식객촌 대표다. 식객촌은 만화가 허영만의 대표작 ‘식객’에 소개된 10곳의 음식점들을 한데 모아놓은 공간으로 이날 모임이 이뤄진 커피숍도 과거 서울 종로 피맛골 자리에 둥지를 튼 식객촌의 일부였다.
지난해 5월 문을 열어 1년 만에 누적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식객촌은 기발한 아이디어에 스토리텔링을 접목해 ‘한식 세계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업성이 확인되자 9월 개장하는 인천공항점을 비롯해 2년 안에 전국에 10개 점포가 더 생길 예정이다.
이처럼 식객촌은 톡톡 튀는 창업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이들에게는 모범사례로 통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서 대표의 수업을 들은 한 여학생은 “단순히 돈만 많다고 창업에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성공하는 법을 배우려고 왔는데 망하는 방법만 익혔다”고 웃었다.
이날 모임은 중소기업청이 주최하고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차세대 여성 CEO 양성교육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지난해에만 전국 21개 대학에서 400명 가까운 여학생들이 교육을 받을 정도로 젊은 여성들의 창업 열기는 뜨거웠다.
식객촌 사업 확대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서 대표가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 제의를 선뜻 받아들인 이유는 명확하다. 여성들이 창업해서 유능한 사업가로 자리잡는게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국내 여성사업체 수는 130여만개(2012년 기준)로 전체 사업체의 39%이지만 대부분 종업원 300인 미만 중소기업이 99.99%다. 더구나 숙박업과 도소매업 등 부가가치는 낮고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 집중돼 있어 재벌가 자제 말고는 도드라진 사업가가 드물다.
자수성가형 여성 CEO가 출현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결혼과 출산, 육아 부담으로 30대 이상 여성의 경력단절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남성중심 기업문화와 접대 관행 때문에 판로확보가 쉽지 않는 점도 문제다. 김유숙 여성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고도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홍보가 제대로 안돼 사장되는 여성기업이 적지 않다”며 “이런 부분을 지원하고 해결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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