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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문학이라는 이름

입력
2015.06.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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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문학은 오히려 그 정의를 둘러싼 질문과 대답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작가나 시인은 그 질문과 대답의 모험을 통해 선행 작품의 영향과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그 바깥의, 다른 질서의 언어를 꿈꾼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얼마나 한가한가.

오늘의 우리 이야기로 당겨오면 당장 눈앞에 존재하는 것은 특정한 문학출판사들을 통해 드러나는 문학출판의 제도와 현실일 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들 출판사가 펴내는 문예지가 있다. 다른 경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한국에서 작가가 되고, 작가로 산다는 것은 이들 문예지의 문학적 평가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사실상 매 호 문예지를 편집할 때마다 선택과 배제를 동반한 가혹한 인정투쟁의 장이 펼쳐진다.

그 결과 어떤 작가에게는 청탁을 하고, 어떤 작가는 밀려난다. 어떤 작품은 좀더 집중된 조명의 대상이 되고, 어떤 작품은 아예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때 문예지 편집위원들은 자신들의 문학적 안목이나 문학관에 비추어 온당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고 믿고 그렇게 할 테지만, 실제 그 결정이 한쪽으로 구부러져 있을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한다. 문예지와 문학출판이 연동되고 결속되어 있는 시스템은 그 결정의 합리성을 의심할 중요한 근거로 거론된다.

당장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합리성 운운 이전에 그들은 무슨 권리로 그런 힘을 행사하는가. 기실 그 문예지들의 힘은(이때 ‘힘’은 그 층위나 양상이 제각기 다를 수 있지만) 한국문학의 장(場), 한국 문학출판의 시장 안에서 형성되어온 것이다. 또 바로 그런 만큼 그들의 결정은 언제든 기각되고 비판 받을 수 있다. 그것은 한낱 의견이고 주관성일 뿐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그 힘이 받아들여지고 장기간 영향력이 지속되면서 부정적 의미의 ‘권력’으로 경화된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힘의 행사가 실제 문학 장의 현실에서 안팎의 비판에 얼마나 열려 있는가 하는 점일 테다. 생각해보면 그 힘의 사회적 지분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어왔다. 이 힘의 약화가 문학출판의 외형적 성장, 몇몇 문학출판사의 대형화(이조차 이미 변곡점을 지난 일인 듯하고, 출판 환경의 변화를 함께 고려할 일이겠지만)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반드시 상충되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는 또 다른 논의의 차원을 요한다.

신경숙씨의 단편 ‘전설’을 둘러싼 표절 논란이 이미 2000년에 제기되었고, 그럼에도 별 후속 논의 없이 묻혀버렸다는 사실은 그 비판과 검증이 기존의 문학제도 안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유력한 증례일 수 있다. 나 자신 그 무렵 제기된 ‘문학권력 비판’이 추측이나 억견, 독단의 거친 방식으로 진행된 데 대해 심한 거부감을 느낀 바 있지만, 그런 거부감이, 제기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토론할 의무를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었을 테다. 그리고 나의 그런 거부감은 당시 내가 몸담고 있던 문학적 관계, 그 속에서 형성된 편견과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논의와 토론의 장이 마련되리라는 소식이다. 당연히 문예지들의 자기 점검과 자기비판, 시스템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도 뒤따르리라 예상된다. 비평가 중심(여전히 남아 있는 ‘비평 우위’의 여러 관성도 생각해보자)의 문예지 운영 시스템이 지금의 문학 현실에 맞는 건지, 작가들의 자율성에 더 힘을 실어줄 섬세한 대안은 없는지 반성도 필요하리라 본다. 최근 젊은 문인들의 자발적 연대, 독립잡지와 같은 형태로 일고 있는 새로운 모색들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커다란 변화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문학은 그 자체 제도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의 제도를 포함해서 항상 제도의 바깥을 성찰하고 꿈꾸는 한에서 생명력을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그 부정성을 품은 성찰과 상상의 공간이지, 문학이라는 이름은 아닐 것이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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